
지난달 27일 출간된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수오서재)에서 두 사람은 말을 못해 괴롭고 외로웠던 유년시절 기억을 꺼냈다.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갈망했던 시간을 거쳐 두 사람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이 됐다. 여진 씨는 한의사, 여주 씨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29일 화상으로 만난 두 사람은 “말은 못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선택적 함구증을 겪지 않는 한 이런 양가감정을 알기 어렵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썼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시절 말을 못해 상처가 됐던 순간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문방구와 분식집이 있던 후문에는 아이들이 북적거려 늘 정문으로만 등하교를 했던 날들, 돌아가면서 교과서 문장을 읽어야 할 때 자신의 차례가 가까워지면 숨이 막혔던 기억….
“친구들이 주는 과자나 초콜릿도 누가 볼까봐 못 먹었어요. 어느 날 너무 먹고 싶어서 몰래 과자를 먹으면서도 그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여진)
“선생님이 발표를 지키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반장선거 후보로 친구들이 저를 추천했을 때 ‘하기 싫어요’라고 선생님한테 작게 말했는데 ‘기권은 없어’라고 하셨던 순간이 상처로 남았어요.”(여주)

선택적 함구증은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한의사인 여진 씨는 예민하고 내성적인 어린이 환자들을 더 세심하게 살핀다. 여주 씨는 자신처럼 표현에 서툰 첫째 아들을 “왜 말 안 해?”라며 다그치기보다 “그럴 수 있어. 점점 나아질거야. 괜찮아”라고 보듬는다. 선택적 함구증이 불치병이 아니란 사실도, 하루아침에 나아지는 게 아니란 사실도 직접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내면의 상처는 누구나 있어요. 그 상처들을 자꾸 들여다보고,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괴로운 순간들을 회상하고 묘사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안아주고 보듬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여진)
“여전히 우울해지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들이 찾아와요. 나의 그런 모습들도 나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여주)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