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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말 못하는 아이? 남들은 모르는 ‘선택적 함구증’ 일수 있어요”

입력 2022-06-30 11:15업데이트 2022-06-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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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구증’ 딛고 의사가 된 쌍둥이 자매
‘착실하고 내성적인 쌍둥이’. 공부는 곧잘했지만 친구들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쌍둥이 자매 윤여진, 윤여주 씨(39)에게 붙었던 별명이다. 부모님은 자폐증을 의심했다. 집에선 수다쟁이가 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거뒀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너 벙어리야?”라고 물었다. 5살부터 초등학교 시절 내내 타인이라는 지옥을 경험했던 두 사람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들이 특정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지난달 27일 출간된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수오서재)에서 두 사람은 말을 못해 괴롭고 외로웠던 유년시절 기억을 꺼냈다.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갈망했던 시간을 거쳐 두 사람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이 됐다. 여진 씨는 한의사, 여주 씨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29일 화상으로 만난 두 사람은 “말은 못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선택적 함구증을 겪지 않는 한 이런 양가감정을 알기 어렵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썼다”고 입을 모았다.




5분 먼저 태어난 언니 여진과 동생 여주는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똑같이 닮았다. 두 사람 모두 5살 무렵 남들 앞에서 말을 못하는 증상이 시작돼 여진은 초등학교 6학년, 여주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 여진 씨는 “유년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셔서 늘 동생과 붙어있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서로 떨어지게 되자 둘 다 분리불안이 생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시절 말을 못해 상처가 됐던 순간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문방구와 분식집이 있던 후문에는 아이들이 북적거려 늘 정문으로만 등하교를 했던 날들, 돌아가면서 교과서 문장을 읽어야 할 때 자신의 차례가 가까워지면 숨이 막혔던 기억….

“친구들이 주는 과자나 초콜릿도 누가 볼까봐 못 먹었어요. 어느 날 너무 먹고 싶어서 몰래 과자를 먹으면서도 그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여진)

“선생님이 발표를 지키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반장선거 후보로 친구들이 저를 추천했을 때 ‘하기 싫어요’라고 선생님한테 작게 말했는데 ‘기권은 없어’라고 하셨던 순간이 상처로 남았어요.”(여주)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 순간은 우연히 찾아왔다. 여진보다 1년 먼저 말을 하기 시작한 여주에게는 ‘얼음 땡’ 게임이 계기였다. 여주는 “내가 ‘얼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말을 했을 때 ‘너 말 할 줄 아네?’라는 반응을 보이면 그 순간 얼어붙는다. 타인이 내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게 말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여진은 “초등학교에서는 내가 ‘말 못하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 있어 더 말을 못했다. 중학교에 가서 환경이 아예 바뀌면서 서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선택적 함구증은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한의사인 여진 씨는 예민하고 내성적인 어린이 환자들을 더 세심하게 살핀다. 여주 씨는 자신처럼 표현에 서툰 첫째 아들을 “왜 말 안 해?”라며 다그치기보다 “그럴 수 있어. 점점 나아질거야. 괜찮아”라고 보듬는다. 선택적 함구증이 불치병이 아니란 사실도, 하루아침에 나아지는 게 아니란 사실도 직접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내면의 상처는 누구나 있어요. 그 상처들을 자꾸 들여다보고,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괴로운 순간들을 회상하고 묘사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안아주고 보듬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여진)

“여전히 우울해지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들이 찾아와요. 나의 그런 모습들도 나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여주)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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