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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천년을 덖은 차향기… 고승들 마음까지 살랑살랑

입력 2022-06-18 03:00업데이트 2022-06-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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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차와 온돌의 고향 하동
한번 불 지피면 100일간 온기 ‘亞字房’
맛-향기 일품인 허왕후의 야생차
소설 ‘토지’ 최참판댁 모델 화사별서
하동 지리산 자락 천년차밭길에서 펼쳐지는 초록빛 일색의 차밭. 하동군은 정금차밭에서 쌍계사 인근 차 시배지로 이어지는 2.7km 구간을 천년차밭길로 조성해 놓았다.
《지리산 토끼봉 자락 해발 800여 m에 둥지를 튼 칠불사에서 작설차를 맛본다. 도응 주지스님이 하동군 화개면의 야생 찻잎으로 우려낸 차는 입안에 달짝지근한 향미를 남긴다. 이곳이 우리나라 차 시배지이자 초의선사에 의한 다도 중흥지라는 점도 차 맛을 북돋워준다. 초의선사는 칠불사에서 참선하면서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고, 또 다른 저술인 ‘동다송(東茶頌)’에서는 하동의 차밭을 찬탄했다. 칠불사는 가야 김수로왕의 7왕자 성불 설화가 있는 고찰이자, 세계 건축사에서 유례가 드문 아자방(亞字房) 온돌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칠불사를 기점으로 하동 지리산 여행을 떠나본다.》
○선승들이 탐내는 아자방
참선 명당지로 유명한 칠불사 아자방을 재현한 아자방온돌체험관에서 도응 주지 스님은 디귿자형 참선방의 독특한구조와 온돌 시스템을 설명했다.
칠불사 주지가 객을 맞아 차를 따라준 방은 매우 독특했다. 방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높이 40cm 남짓한 나무 단이 디귿 자 형태로 마주보게 한 모양새(ㄷコ)다. 나무 단 아래쪽 방바닥은 자연히 열십(十)자 형태가 된다. 방 밑의 온돌 또한 독특한 구조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대형 아궁이로 한번 불을 때면 아(亞)자 형태의 온돌을 따라 방 안 온기가 며칠간 유지되는 구조라고 한다. 바로 칠불사 벽안당(아자방)을 재현해 놓은 아자방 온돌체험관이다. 도응 스님은 “나무 단 위에서 좌선이나 명상을 한 뒤, 방바닥에서 차를 마시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의스님이 참선을 한 원래의 아자방은 현재 발굴 및 복원 공사 중이어서 개방되지 않고 있다. 아자방에 대한 학술 조사 결과 고려시대 유물 등이 나와 학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고려 때 이미 최고의 온돌 건축물이 운영되고 있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실 아자방의 전설과 기록은 훨씬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년) 때 ‘구들도사’로 명성이 높은 담공선사가 이중 온돌방인 아자방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고, 심지어 ‘칠불선원사적기’엔 신라 지마왕 8년(119년)에 금관가야 출신 담공선사가 지었다고 씌어 있다. 아자방 온돌은 한번 불을 지피면 100일 혹은 49일간 온기가 지속됐다고 해서 중국 당나라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모델인 하동의 화사별서(일명 조부잣집).
아자방은 겨울에 눈이 와도 쌓이지 않고 녹아버린다는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풍수비결서(도선국사비기)에도 등장한다. “하동 땅에서 북쪽으로 100리 가면 와우형(臥牛形) 명지가 있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면 부(富)는 중국의 석숭 못지않고 백자천손(百子千孫)이 번창할 것이며, 기도처로 삼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득도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누워 있는 소(와우)’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칠불사다. 칠불사 경내에는 소의 젖으로 해석하는 샘물인 ‘유천’이 있고, 소의 몸통에 해당하는 운상선원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칠불사는 서산대사, 부휴선사 등 유명한 선승들의 일화가 남아 있고, 이곳에서 득도한 고승들도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칠불사가 9km 아래쪽의 쌍계사 말사임에도 ‘동국제일선원’이란 현판이 당당히 걸려 있는 이유다. 도응스님은 “아자방에서 수행하신 스님들이 잘 풀리셨기 때문에 이곳에서 참선하고 싶어 하는 스님들의 민원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허왕후가 ‘강남 맹모’의 원조?
가야 수로왕부부와 성불한 7왕자의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는 칠불사 영지.
칠불사에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운상선원은 가야국 김수로왕의 7왕자 설화와도 이어지는 곳이다.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난 7왕자들은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김해에서 수행 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야산, 화왕산, 와룡산 등지로 옮겨 다니다 마침내 기원후 101년 지리산 자락 운상선원 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7왕자의 성불(成佛)을 기념해 칠불사(칠불암)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칠불사 대웅전에는 이를 기리는 7부처가 모셔져 있고, 자식을 그리워한 김수로왕 부부가 연못 물에서 부처가 된 7왕자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영지’도 있다.

칠불사에서 계곡을 따라 화개장터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수로왕이 7왕자를 만나기 위해 임시 궁궐(태왕궁)을 지었다는 범왕(凡王)마을, 허왕후가 머물렀다는 대비마을(大妃洞·화개면 정금리)도 있다. 또 지리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산청에는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피라미드형 무덤도 있고, 북쪽의 함양에는 구형왕대에 쌓았다는 추성도 있다. 이에 따라 지리산은 역대 가야왕실이 수시로 들락거린 산이었으며, 칠불사는 지리산권 가야불교의 중심무대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동의 차꾼들은 우리나라 차 문화 역사 역시 가야에서 찾곤 한다. 허왕후가 자신의 고향 인도에서 차 종자를 가져옴으로써 차 문화가 지리산까지 퍼졌다는 주장이다. TV 휴먼다큐에도 소개된 지리산 ‘차도사’ 송화정 씨는 “아들들의 수행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지리산까지 찾아와 차를 공양한 허왕후야말로 ‘강남 맹모’의 원조”라고 말할 정도다.

○하동의 숨은 도사들
하동에는 숨은 듯 자리 잡은 명소가 적잖다.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이 생전에 즐겨 찾은 곳으로 유명한 화개장터의 다우찻집은 수제차 전문점이다. 다우찻집의 이승관 사장은 손맛으로 차를 덖는 ‘덖음 도사’로 유명하다. 그는 법정 스님이 자신이 덖은 차 맛에 반해 직접 ‘청심아’라는 차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말했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정성을 다해 차를 덖으면 덖을수록 차 맛이 다르다”는 게 그의 차 철학이다.

화개장터에서 차 한잔을 마신 후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도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바로 악양면 정서리의 ‘화사별서’다. 조선 개국공신인 조준의 후손 조재희(1861∼1941)가 조성한 고택인데, 200m²(약 60평)에 이르는 수려한 연못은 한때 식솔만 40여 명이던 이 집안의 가세를 짐작케 한다.

고택을 관리하고 있는 조덕상 박사는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길상’은 6·25전쟁 때 사망한 육촌 장형의 실제 이름이고, 고향을 떠나 만주를 돌아다니는 스토리는 우리 집안 이야기를 차용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세계 100인 공학자’에 선정된 기술사인 조 박사는 화사별서의 원형 보존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현재 화사별서의 안채와 행랑채는 원형 그대로이고, 조 박사의 부친인 조한승 옹(97)이 살고 있다. 지금도 안채 마루에 앉아 유교 경전인 ‘서전 서문’을 끝까지 암송해내는 노옹의 모습에서 도인의 풍모도 느껴진다. ‘서전 서문’을 열심히 외면 도에 통한다는 얘기가 유림 일부에서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해발 850m 고지대에 있는 삼성궁의 건국전.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곳이다.

칠불사처럼 해발 850m 고지대에 있는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청암면 묵계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묵계 출신의 강민주 도사(한풀선사)가 1983년부터 ‘청학이 깃드는’ 이 터에다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건국전을 비롯해 1000개가 넘는 돌탑, 한반도와 만주 고토를 상징하는 듯한 연못 등은 사진 촬영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화개장터에서 삼성궁 가는 길이 벅차다면 하동읍에 있는 송림공원을 추천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군락지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된다.




글·사진 하동=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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