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cm 금박에 0.05mm 선으로 새긴 화조도, 통일신라시대 ‘초정밀 금속예술’ 첫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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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서 출토 ‘선각단화쌍조문금박’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꽃-새 그려
현미경으로 봐야 전체 그림 파악
“신에게 바친 봉헌물 일부 가능성”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공개한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 ‘선각단화쌍조문금박’과 100원짜리 동전(위쪽 사진). 이 유물을 
확대해 보면(아래쪽) 꽃무늬 좌우로 멧비둘기 한 쌍이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공개한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 ‘선각단화쌍조문금박’과 100원짜리 동전(위쪽 사진). 이 유물을 확대해 보면(아래쪽) 꽃무늬 좌우로 멧비둘기 한 쌍이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가로 3.6cm, 세로 1.17cm.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금박에 별세계가 펼쳐져 있다. 상상의 꽃 단화(團華)가 사방에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멧비둘기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다. 꽃과 비둘기 모두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놀랍게도 이 그림은 A4 용지보다 얇은 0.04mm 두께의 금박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0.05mm의 세선(細線)으로 새겨져 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 6배가량 확대해 봐야 무늬 전체가 드러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을 16일 공개하자 학계는 “통일신라시대 금속예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 금박 유물은 2016년 11월 경주 월지의 임해전(臨海殿) 터 건너편 동쪽 건물터에서 2점으로 쪼개진 채 발견됐다. 20m가량 떨어져 있던 두 금박 조각은 심하게 구겨진 상태였다. 연구소는 발굴 후 2년간 보존처리를 거쳐 두 조각을 하나로 합쳤다. 연구소는 금박에 새겨진 화조도(花鳥圖)가 7, 8세기 무렵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양식인 데다 유물이 출토된 토층이 통일신라시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 유물이 8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신라시대 그림이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天馬圖)와 불교경전 표지 3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번 출토품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다. 한정호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신라시대 회화 예술의 우수성을 증명할 핵심 유물”이라고 말했다. 금박에 새겨진 화조도의 양식이 실크로드에서도 발견된 점으로 미뤄 신라와 서역의 문화 교류 흔적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박 유물의 용도는 아직 미스터리다. 학계는 동궁과 월지가 신라시대 별궁 터였다는 점에 근거해 왕실 용품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어창선 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기물의 끝 장식이거나 마구리 장식일 수 있다. 쓰임새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누군가에게 과시할 수 없을 만큼 극도로 미세하게 새긴 수법으로 미뤄 종교 유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정호 교수는 “육안으로는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정교한 유물이다. 인간이 아닌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제작 기법도 밝혀내야 할 과제다. 김경열 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넓은 금판에 문양을 새긴 뒤 필요한 부분을 오려냈을 것이다. 현미경 분석 결과 금박을 선에 맞춰 잘라낸 흔적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통상 금속공예품은 망치로 정을 내리쳐 무늬를 새기지만, 이번 출토품은 금박 두께가 0.04mm로 얇아 이런 방식으로 새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극미세 철필로 금박을 긁어내듯 무늬를 새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금박 유물은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통일신라시대#초정밀 금속예술#선각단화쌍조문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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