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문화대혁명 폭력의 역사속 인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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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13번째 장편소설 ‘발 없는 새’
실존인물 장궈룽-천카이거 등장
“우린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

선과 악. 소설가 정찬(69·왼쪽 사진)은 둘의 분리를 경계한다. 악 속에 선이 있고 선 속에 악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3일 출간된 그의 열세 번째 장편소설 ‘발 없는 새’(창비·오른쪽 사진)에도 그 주제의식이 담겼다. 중국 전통악기 ‘얼후’ 연주가이자 역사학자인 주인공 워이커씽에게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피가 함께 흐른다. 워이커씽의 어머니는 난징(南京)대학살 당시 일본군에게 성폭행 당해 워이커씽을 낳았다.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꿈을 간헐적으로 꿨다. 그 광경을 꿈의 어디선가 보고 있던 나는 강간하는 자가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다’고 워이커씽은 고백한다.

7일 전화로 만난 정 작가는 “워이커씽에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혼이 모두 담긴 것처럼 우리 모두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허구의 인물인 워이커씽을 중심으로 소설에는 홍콩 영화배우 장궈룽(張國榮), 베스트셀러 논픽션 ‘난징의 강간’을 쓴 중국계 미국인 역사가 아이리스 장,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영화 ‘패왕별희’의 감독 천카이거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워이커씽은 장궈룽이 ‘패왕별희’의 데이 역은 삶의 고통이 너무 큰 캐릭터여서 이입하기 어려워하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아이리스 장과는 난징대학살의 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활동한다.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을 통해 난징대학살, 일본군 성노예제, 문화대혁명 등 20세기 전반에 걸친 폭력의 역사를 짚는다.

그가 소설 집필 중 가장 많이 본 책은 천카이거 감독의 논픽션 ‘나의 홍위병 시절’(1991년). 홍위병은 마오쩌둥을 지지하며 문화대혁명에 나선 학생들로, 천카이거는 중학교 때 홍위병이 돼 국민당 활동을 한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했다. 정 작가는 “천카이거를 통해 역사적 상황으로 인한 소년의 번민, 고통을 생생히 느꼈다. 정치와 권력이라는 외부 상황 자체보다 그 상황에 던져진 인간의 존재 양식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발 없는 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그의 1992년 소설집 ‘완전한 영혼’부터 이번 신작까지 정 작가는 권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폭력에 희생되는 개인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권력은 우리 생활 도처에 있어요. 남성과 여성, 빈자와 부자, 부모와 자녀 등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에 의한 상하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권력을 가진 이는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정찬#장편소설#발 없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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