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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전란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일본의 태도

입력 2022-06-04 03:00업데이트 2022-06-04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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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징비록/이종각 지음/296쪽·2만 원·한스북스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최고 관직인 영의정과 도체찰사(都體察使·전시 최고사령관)를 지낸 류성룡(1542∼1607)은 자신의 전쟁 경험을 회고록으로 남겼다. 회고록의 이름 ‘징비(懲毖)’록은 ‘미리 징계해 경계한다’는 뜻으로,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해 불행한 전쟁의 재발을 막고자 했다.

징비록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간행됐다. 조선통신사의 역관에 의해 밀반출된 징비록은 1695년 교토에서 ‘조선징비록’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이 처음 간행된 후 30여 종의 번역본과 영인본(影印本)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엔 일본 역사가들이 본격적으로 징비록에 대해 연구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선 1960년대 첫 한글번역본이 나왔다. 학계의 연구도 1970년대 들어서야 시작됐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정적들에 의해 죄인으로 몰려 관직에서 탄핵된 사유인 ‘주화오국(主和誤國·적과 평화를 추구하다가 나라를 그르침)’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주화오국은 류성룡이 속한 남인의 반대 당파인 북인이 ‘류성룡 등 일부 관직 요인들이 일본과 친화적으로 지내며 나라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논리다. 이후 일본은 징비록을 통해 일본의 수군이 왜 조선보다 열세였는지, 조선에서 류성룡 이순신과 같은 공을 세운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숙청됐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일본은 해전이 관건이었던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보다 징비록 분석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을 잊지 말고 ‘징비’의 뜻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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