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 배우’ 전국향, 이번엔 해고위기 처한 노동자 이야기 전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9일 1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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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영상을 넘나드는 전국향(59)은 다작(多作)으로 유명한 배우다. 올해로 데뷔 39년을 맞은 그는 한 해 평균 4편 가량의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선다. 드라마는 올해에만 ‘소년심판’ ‘빈센조’ ‘기상청 사람들’ ‘킬힐’에 출연했다. 다만 그가 맡은 배역은 주인공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후배들이 작품 하자고 하면 주·조연 따지지 않고 ‘내가 꼭 필요하겠거니’ 하다보니 이것저것 많이 하게 됐다”며 “저들도 사정이 어려우니까 날 부르지, 안 그럼 다른 큰 배우랑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이번엔 주연으로 무대에 선다. 19일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7분’에서 섬유회사의 노동자 대변인 블랑세 역을 맡게 된 것. 연극 ‘7분’은 다국적 기업에 매각된 섬유회사 다니는 노동자들의 불안을 다루는 작품이다. 구조조정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다국적 기업이 해고 두려움을 느끼는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조건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노동자의 하루 휴게시간을 15분에서 8분으로, 7분을 단축하라는 것. 7분만 양보하면 노동자들은 모두가 무사히 고용승계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사로잡힌다.

“개개인에게 7분은 짧지만 전체 노동자는 200명이 넘으니 모두의 7분은 한 명이 7분을 포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죠. 공장주에겐 막대한 이익을 안기지만 노동자에겐 무엇이 남을까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내어주게 되지 않을까요? 저희 작품은 ‘7분’에 담긴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말하는 연극입니다.”

연극 ‘7분’은 한국 연극 최초로 배우 11명 모두에 각각 수어통역사가 붙는다. 1명의 수어통역사가 모든 배우의 대사를 전달하는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대사를 하면 옆에 선 통역사가 수어로 연기해요. 수어가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굉장한 감동이 오더라고요. 연습할 때 넋 놓고 수어를 보다 대사를 놓친 적도 많아요.(웃음)”

1983년 서울예대 재학생이었던 그는 대학로 연극판에 데뷔한다. 이후 39년 간 1년 이상 무대를 떠난 적이 없다. 남편도 학교 선배이자 연극무대에 같이 서온 배우 신현종이다.

“난 처음에 그랬어요. 내 삶에서 제일 먼저는 연극이고 그 다음이 가족이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벌이가 안정된 건 아니었지만 감사하게 누구에게 빚지거나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없으면 없는 대로. 나는 대신 좋아하는 거 하며 살잖아? 이런 마음으로 살았어요. 우리 남편도 그랬을 거고요.”

배역이 주어지면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는 그는 독립 장편영화 ‘욕창’(2020년), ‘혜옥이’(2021년)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소속사가 생긴 이후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여전히 “무대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천생 연극인이다.

“회사에선 연극 너무 많이 한다고 불평해요.(웃음) 작품이 들어와도 너무 연극을 많이 하니까 다른 건 못한다고요. 근데 나는 아직까지도 연극이 훨씬 좋아요. 대본과는 달리 희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어요. 배우로서 인물을 구축하기에 훨씬 좋죠. 촬영 일정이 빡빡해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볼 새도 없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앙상블 작업이죠. 우리끼리 서로 얘기하고 피터지게 싸웠다가 울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찾아오는 것들이 아직은 훨씬 값지게 느껴지네요.”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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