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몸짓의 향연’ 찰나의 순간 ‘찰칵’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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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 신체-동작 담는 ‘발레사진가’
근육 질감-신체라인 드러날 때 정확히 포착하는 ‘타이밍의 예술’
무용수 출신 작가들 경험 토대로 공중 머무는 모습 등 촬영 최적
“무용수는 아름다운 선 만들고 감정 표현하는 최고의 피사체”

스페인에서 공연한 ‘해적’ 갈라 무대(2020년)에서 나란히 무대에 선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 김기민(오른쪽)과 영국 로열 발레단 수석무용수 마리아넬라 누녜스. 김윤식 사진작가 제공
스페인에서 공연한 ‘해적’ 갈라 무대(2020년)에서 나란히 무대에 선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 김기민(오른쪽)과 영국 로열 발레단 수석무용수 마리아넬라 누녜스. 김윤식 사진작가 제공
‘한 컷의 추상예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발레리노 출신의 박귀섭 사진작가(38)는 무용수를 찍은 사진을 이렇게 정의했다. 무용수의 몸짓은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추상의 영역이기에 찰나를 담아낸 사진 역시 추상예술이라는 얘기다.

오로지 무용수를 사진에 담는 이들이 있다. 화가들이 인체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듯, 무용수의 신체와 동작을 사진예술의 소재로 삼는 ‘발레 사진작가’들이다. 국내 양대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이들을 인터뷰했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진작가 1순위로 꼽는 박귀섭 작가는 “무용수는 단련된 신체로 몸짓이 주는 에너지를 표현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내고 여러 감정을 표현하기에 최고의 피사체”라고 말했다.

무용수를 촬영하는 작업은 고난도의 기술을 요한다. 무용수마다 각기 다른 근육의 질감이나 신체 라인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정확히 포착해야 하기 때문. ‘타이밍의 예술’을 하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무용수 촬영이 유독 도전적인 작업으로 통하는 이유다.

김경진 유니버설발레단 전속 사진작가(36)는 “인간의 몸만큼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는 건 없는데 발레는 신체의 선과 움직임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르”라며 “순간의 역동성, 미세한 근육 변화를 사진에 담는 게 짜릿하다”고 말했다. 손자일 국립발레단 전속 사진작가(36)는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를 잘 찍는 게 평생 로망인 작가도 많다”고 했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2019년)에서 오데트, 오닐 역을 연기한 박슬기 수석무용수. 손자일 사진작가 제공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2019년)에서 오데트, 오닐 역을 연기한 박슬기 수석무용수. 손자일 사진작가 제공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걸출한 발레 사진작가 중에는 무용수 출신이 꽤 있다. 국립발레단과 체코 국립발레단을 거친 김윤식 사진작가(33)는 “무용수들이 신경 쓰는 동작의 방향이나 라인을 아는 게 중요하다”며 “점프했을 때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도 정확한 포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순간을 잡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귀섭 작가도 “발레리노로 활동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게 무용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어떤 무용수는 자신의 몸짓을 찍은 사진을 일종의 ‘자습장’으로 활용한다. 발레는 초 단위로 정확한 동작을 연기해야 전체 작품의 질이 올라가는 만큼 자신의 사진을 보고 동작을 점검하는 것. 김경진 작가는 “사진을 훑어보면서 ‘이런 게 문제였구나’ ‘몸을 이렇게 썼구나’라며 복습하는 무용수가 많다”고 했다. 박귀섭 작가는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촬영하면 굳이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무용수 본인이 실수한 걸 스스로 알아차린다”고 말했다.

키 181cm의 장신 발레리나 이상은의 프로필 사진. 그는 현재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윤식 사진작가 제공
키 181cm의 장신 발레리나 이상은의 프로필 사진. 그는 현재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윤식 사진작가 제공
무대에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무용수들은 사진 결과물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2018년 내한한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공연 장면을 촬영한 김경진 작가는 “아치형으로 둥글게 말린 발등은 기본이고 ‘턴 아웃’(무릎과 발끝이 바깥을 보도록 한 채 다리를 회전하는 동작)의 정석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근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의 이상은 수석무용수와 함께 작업한 김윤식 작가는 “이상은이 클래식 발레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형화되지 않은 몸짓을 보여줘 촬영하면서 ‘이런 동작도 가능하구나’라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박귀섭 작가는 최고의 피사체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의 김지영 경희대 교수를 꼽았다. 그는 “김지영은 어떤 무용수보다 자신의 몸과 이미지를 꿰뚫고 있다. 팔다리가 길고 가는 신체 선의 아름다움이 사진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발레사진가#몸짓의 향연#찰나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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