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실참여 문학사조, 조조가 창시… 간웅은 꾸며낸 이미지”

이기욱 기자 입력 2021-11-24 03:00수정 2021-11-2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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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주 교수 ‘조조의 재발견’ 펴내… “황제에 잘 보이려 글 쓰던 시대
조조는 실권자 동탁 詩로 비판… 문인 모여들어 중국 첫 문단 형성
조씨의 한나라 계승에 반발 세력, 일가 몰살 등 간악한 이미지 씌워”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조는 낮에는 군사 업무에 몰두하다 밤이면 늘 경전을 공부한 사람”이라며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조조는 훌륭한 문인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조조는 문인으로서 공로가 큽니다. 중국 전통문학이 조조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에서 만난 원로 중문학자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87)는 조조(155∼220)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밝혔다. 김 명예교수는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문학사를 정리하다가 조조가 현실참여의 문학사조를 중국에서 처음 창시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 간웅으로만 알려진 조조의 일생을 재평가한 책 ‘조조의 재발견’(연암서가)을 20일 출간했다.

김 명예교수는 조조 이전 중국 시는 문인들이 황제에게 잘 보여 출세하기 위해 지은 게 다수라고 말한다. 중국 전한시대 문인 사마상여(기원전 179∼기원전 117)가 한 무제(기원전 156∼기원전 87)에게 사냥하는 황제의 위엄을 칭송하는 시 ‘상림부(上林賦)’를 바치고 중랑장(中郞將·황제 근위병을 통솔하는 장수) 벼슬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조조는 ‘역적이 나라의 권세를 잡아 왕을 죽이고 도읍을 부수었네’라는 문구를 담은 한시 ‘해로(해露)’를 통해 당대 실권자 동탁(137∼192)을 비판했다. 그는 시에서 동탁이 한나라 수도 낙양(洛陽)을 불태우고 장안(長安)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헌제(181∼234)에게 강요한 사실을 애통해했다. 김 명예교수는 “조조의 현실참여 문학에 감동한 문인들이 모여 중국 최초의 문단이랄 수 있는 건안칠자(建安七子)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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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간악한 이미지는 유씨가 아닌 조씨가 한나라를 계승한 데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견해다. 예컨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의 일가족을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 명예교수는 “사서 ‘삼국지’를 보완하는 주석마다 여백사 관련 기록이 서로 다르다. 몰살 자체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북위 사서 위서(魏書)는 여백사의 아들들이 조조를 위협하며 그의 말과 소지품을 빼앗아 조조가 반격한 것이라는 기록을 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조조는 중국에서 정치, 문학적 업적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며 “이 책이 조조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조조#조조의 재발견#김학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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