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근대식 호텔에 서면 소름이 돋는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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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스릴러 펴낸 강화길 작가
1888년 인천에 문 연 대불호텔
한때 외국인에게 인기 높았지만 경영난 겪다 현재는 전시관 운영
“주인 수없이 바뀐 호텔 배경으로 한국 특유의 원한에 관해 이야기”

인천 중구에 있는 대불호텔 전시관에는 개화기 조선에 유입되기 시작한 서양식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진 객실이 재현돼 있다. 과거 호텔은 침대가 있는 객실 11개, 다다미방으로 이뤄진 객실 240여 개를 운영했지만 현재 전시관에 재현돼 있는 객실은 3개다. 인천=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인천 중구에 있는 대불호텔 전시관에는 개화기 조선에 유입되기 시작한 서양식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진 객실이 재현돼 있다. 과거 호텔은 침대가 있는 객실 11개, 다다미방으로 이뤄진 객실 240여 개를 운영했지만 현재 전시관에 재현돼 있는 객실은 3개다. 인천=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원한을 품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런 건 선택하는 게 아니야.” “어차피 원한은 나를 찾아와.”

고풍스러운 침대와 옷장, 방 한편에 놓인 커다란 축음기, 방을 밝히는 샹들리에와 아기자기한 벽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글로리 호텔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이면서도 안락한 풍경이었건만, 인천 중구 대불호텔 전시관에 들어선 기자의 귀에는 호텔에 떠도는 악령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마음 깊은 곳의 악의(惡意)일 뿐 악령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을 찾아 놓고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 이곳까지 타고 온 1호선 지하철 안에서 강화길(35)의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문학동네)을 막 읽은 참이어서다.

지난해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강화길이 두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대불…’은 1950년대 인천항 인근의 대불호텔에 이끌리듯 모여든 네 사람이 겪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다룬 이야기다.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거나 이념 갈등으로 마을 전체가 풍비박산 나버린 일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호텔로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서 악령의 소행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사망 사건과 미스터리가 이어진다.

대불호텔은 1888년 일본인 해운업자인 호리 히사타로가 인천항을 통해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 외교관 등 외국인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문을 연 3층 벽돌조의 서양식 호텔이다. 처음 호텔이 열렸을 때는 외교관들의 숙박 문의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성행했다. 그러나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여행자들이 인천에서 하루를 묵을 필요가 없어지자 경영난에 빠졌다. 1918년 한 중국인이 인수해 북경요리 전문점 ‘중화루’를 열었지만 1970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강화길은 2018년 초 현재는 전시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을 찾았다가 이번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 평소 사람의 마음과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악의, 원한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이 호텔의 사연과 풍기는 분위기가 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강화길은 “대불호텔은 이방인에 의해 세워진 이후 주인도, 오가는 사람들도 수없이 바뀐 장소다. 침략의 형태로 근대사를 열었던 한국이 격동의 한가운데서 느꼈을 고립감을 이 호텔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도 어느새 내년이면 등단 10년째에 접어든다. 지난해 출간한 단편집 ‘화이트호스’(문학동네)에서 음산한 분위기의 소설로 눈길을 끌었던 강화길은 이번 소설로 ‘강화길식 고딕 호러의 또 한 번의 도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처럼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의 고딕 소설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는 “호러 소설을 딱히 고집하지는 않는다. 독자가 읽는 데 시간 아깝다고 느껴지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아서 제가 지극히 좋아하는 장르를 써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강화길 작가#장편 스릴러#대불호텔#대불호텔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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