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인파 대신 레이저-조명… 英 광야에 펼쳐진 ‘한여름 밤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5일 03시 00분


글래스턴베리 온라인 음악축제
콜드플레이-하임 등 14개 팀
6시간 몽환적 무대 선보여

영국 서머싯의 워디 팜에 설치된 ‘피라미드 스테이지’ 앞에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특별 공연을 펼친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Anna Barclay
영국 서머싯의 워디 팜에 설치된 ‘피라미드 스테이지’ 앞에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특별 공연을 펼친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Anna Barclay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돼 영국의 푸른 광야에 뚝 떨어져 ‘한여름 밤의 꿈’을 꾼 듯했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1832∼1898)도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도 상상하지 못했을 정경을 첨단 기술이 가능케 했다.

23일 저녁(한국 시간) 영국에서 송출된 대형 온라인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라이브 앳 워디 팜’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6시간 동안 콜드플레이, 데이먼 알반, 하임, 케이노 등 14개 팀이 영화적 영상 연출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1970년 시작된 ‘글래스턴베리’는 영국 서머싯으로 매년 20만 명 이상의 음악 팬을 불러들이는, 세계 최대의 야외 대중음악 축제다. 팬데믹으로 작년 행사는 취소됐고 올해는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아델, 콜드플레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영상을 맡았던 마흔 살의 젊은 거장 폴 더그데일이 축제의 총연출을 담당했다. 무대, 그 자체부터 파격이었다. 콜드플레이는 글래스턴베리의 심장 격인 거대한 ‘피라미드 스테이지’를 비워두고 시작했다. 예년 같으면 수십만 인파가 들어찼을 무대 앞 잔디밭에 원형 무대를 세웠다. 피라미드 스테이지는 골조만 훤히 드러낸 채 거대한 소품 역할을 했다. 콜드플레이가 ‘Fix You’ ‘Viva La Vida’ ‘The Scientist’ 등 대표곡을 연주하는 동안 인파 대신 레이저와 조명으로 들어찬 객석이 거대한 원형 생물처럼 빛으로 물결쳤다. 광야에 쏟아진 비는 무료 특수효과가 됐다. 레이저와 불꽃이 빗물에 투사되며 카메라에 몽환적인 정경을 펼쳤다.

현지의 고대 유적인 스톤 서클(환상 열석) 내에도 사상 최초로 무대를 뒀다. 데이먼 알반, 울프 앨리스, 하임 등이 신비로운 돌무더기 사이로 빛과 드라이아이스에 휩싸여 공연했다. 영국 로커 PJ 하비는 공연 대신 숲길을 거닐며 자작시를 낭송했다. 드론과 360도 카메라가 분위기를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하룻밤 꿈처럼 명멸한 사상 첫 ‘온라인 글래스턴베리’는 어떻게 제작됐을까. 현지 제작사 ‘드리프트(Driift)’의 릭 새먼 대표는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워디 팜’ 일대의 8곳에 무대를 특설하고 8일에 걸쳐 녹화했다. 매일 시차를 두고 조금씩 촬영해 하룻밤 사이 열린 일처럼 편집해냈다”고 설명했다. 콜드플레이 공연은 마지막 날(21일) 밤에 촬영해 밤새 편집을 마쳤다고 한다.

새먼 대표는 “훗날 팬데믹 상황이 끝난다고 해도 이런 식의 스트리밍 콘서트가 예술성, 독창성, 일회성으로 승부한다면 세계 공연 시장의 새 수익 모델로 남을 뿐 아니라 새로운 예술 매체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만약 한국에서 공연을 연다면 서울 도심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와 특별한 콘서트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레이저#조명#음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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