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일제강점기 최대 지주의 상투어 ‘괜히 떠들지 말라’

이진 기자 입력 2021-05-11 11:40수정 2021-05-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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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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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낼까요? 일제강점기 최대지주는 누구였을까요? 힌트가 필요하겠죠? 사유지의 주인입니다. 그럼 조선총독부가 빠지죠. 개인이 아니라 법인입니다. 그래도 막연한가요? 정답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입니다. 1908년 설립한 일제의 국책회사죠. 6년 만인 1914년에 동척은 7만 정보가 넘는 땅을 소유합니다. 1정보가 3000평이니까 21억 평이 넘는 땅의 주인이죠. 21억 평이면 지금 서울의 11배가 넘는 크기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규모죠.

동척이 설립됐을 때 대한제국이 30%를 출자했습니다. 현금이 아닌 현물, 바로 땅으로 납부했죠. 땅이 이곳저곳 흩어져 있자 한 곳으로 모았죠. 이 곳이 황해도 재령평야였습니다. 나무리벌이라고 불렸던 기름진 옥토였죠. 동척은 빌려서 마련한 나머지 70%의 자본금으로 다른 논을 더 샀습니다. 일제는 일본 농민을 데려와 이런 논을 넘겨줄 계획이었죠. 초기 구상으로는 무려 1000만 명을 들여오려고 했답니다. 대륙 침탈의 토대로 삼을 심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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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농민의 반발이 거셌고 일본 농민도 그리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농민 24만 명을 들여오려던 목표가 무산됐으니까요. 1928년 현재 약 4000가구만 이민 왔을 뿐입니다. 일본의 앞선 농사기술을 전수해 생산량을 늘린다는 계획도 틀어졌죠. 이제 동척 자체가 지주 노릇을 하게 됐습니다. 수많은 우리 농민을 소작인으로 부리며 소작료를 받아갔죠. 동척은 자본금으로 빌린 돈의 부담이 컸습니다. 소작인들에게는 거대 악질 지주가 생긴 것이죠.

그동안 곳곳에서 동척 소작인들의 원성이 들려왔지만 1924년 재령평야에서 큰일이 터졌습니다. 이 해는 가뭄과 홍수 벌레 바람이 겨끔내기로 몰아닥쳐 흉작 중의 흉작이 됐죠. 그러나 10월에 동척은 3석6두를 거둬들인 한 소작인에게 소작료 6석을 내라고 했습니다. 평년 수준 소작료였죠. 기가 막힌 소작인들은 동척 주재소로 몰려가 소작료를 깎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재령군 북률면과 봉산군 사인면 소작인들의 처지가 특히 딱했죠. 하지만 주재소 앞마당에서 5일간 농성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작인들은 동척 지점으로 몰려갔습니다. 지점장에게 애원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지점장은 출장 가 자리에 없다고 했습니다. 500명 가까운 소작인들은 만나줄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했죠. 북쪽의 겨울은 빨리 찾아옵니다.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농성에 들어갔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표를 뽑아 동척 경성지점과 총독부, 황해도청 등으로 보내 진정서를 전달하며 하소연하기도 했죠.

경성까지 올라가 만난 동척 총재는 ‘여기서도 생각이 있으니 돌아가서 조용히 있으라’라고 말했습니다. 동척 경성지점장은 ‘아무쪼록 원만히 해결할 터이니 조용히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라고 했죠. 총독부 사회과장은 ‘공연히 떠들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훈계했고요. 농성과 호소, 애원, 진정도 효력이 없자 농민들은 소작조합을 결성하고 소작권 박탈 무효 등을 결의하며 맞서기도 했습니다.





경성지점을 통해 해결될 듯하던 사태는 해를 넘겨 동척의 소작료 강제집행으로 치달았습니다. 사인면 50가구의 옷 가마 이불 식기 등을 빼앗았죠. 1월말 혹한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울부짖는 소작인들에게 ‘너희들 죄 때문이다’라고 내뱉었죠. 북률면에서는 엽총으로 무장한 일본인 40여명과 몽둥이를 쥔 어용단체 향상회원 15명이 강제집행을 거들었죠. 소작인들이 막아서자 일본인들은 갑자기 총을 쏘았습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죠. 경찰은 총질을 눈감아 줍니다. 부상자가 없다면서요. 일본인을 때렸다는 혐의로 소작조합 대표들이 연행된 사이에 강제 집행은 속행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농민들의 현실이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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