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설로 다시 태어난 ‘크리스티나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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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 조각/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이은선 옮김/384쪽·1만5000원·문학동네

소설 ‘세상의 한 조각’을 쓴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에게 영감을 준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캔버스에 템페라, 1948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저자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한 조각’은 허구”라면서도 “실제 역사적인 사실을 최대한 살렸다”고 밝혔다.
소설 ‘세상의 한 조각’을 쓴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에게 영감을 준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캔버스에 템페라, 1948년.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저자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한 조각’은 허구”라면서도 “실제 역사적인 사실을 최대한 살렸다”고 밝혔다.

당신은 이 그림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앙상한 두 팔로 힘겹게 몸을 지탱한 여성. 그녀는 마른 풀이 무성한 들판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외롭게 앉아 있다.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그림에서 누군가는 동경을 읽어냈고, 다른 이는 동정심을 떠올렸다. 혹자는 인간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까지도 느꼈다고 한다.

미국 국민화가로 불리는 앤드루 와이어스(1917∼2009)가 명성을 얻게 된 건 그가 31세인 1948년에 내놓은 이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 덕분이다. 그림 속 모델은 미국 메인주에 살던 애나 크리스티나 올슨(1893∼1968)으로 와이어스가 알고 지내던 이웃이자 친구였다.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던 그녀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했지만 휠체어 사용을 거부했다. 그는 두 팔로 하체를 끌며 기어 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와이어스가 영감을 받아 화폭에 담은 그림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다. ‘미국의 모나리자’로도 불리며 지금껏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림은 저자에게도 꽤나 큰 영감을 준 모양이다. 영국 태생으로 미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한 저자는 2013년 소설 ‘고아 열차’로 이름을 알렸다. 다음 작품을 위해 소재를 찾던 중 이 그림을 떠올렸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와 직접 취재한 실존 인물의 삶을 토대로 거침없이 상상력을 뻗어냈다. 공교롭게도 미국 메인주에서 유년을 보내 그림 속 풍경이 익숙했던 저자는 후에 ‘크리스티나’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던 그림 속 모델에 묘하게 이입했다고 밝혔다.

책은 크리스티나가 세 살 때인 1896년에 시작하는 과거와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와 그녀가 만난 1939년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소설은 그녀의 삶을 상상해 그린 일대기다. 동시에 그녀 마음속 여러 심경의 갈래를 훑어가는 지도를 보는 듯하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은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활기가 넘쳤다. 왕복 5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등교했고 학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큰 농장을 짓고 살았던 그녀의 가족에겐 노동력이 더 절실했다. 학업을 중단한 채 그녀는 결국 집안일을 도맡았다.

와이어스와의 만남은 휴가 차 메인주 쿠싱에 놀러왔던 소녀 뱃시의 소개로 성사됐다. 처음엔 인근 풍경, 집 그리기에 관심이 있던 그는 크리스티나 내면에 숨쉬고 있던 세상에 대한 갈망을 포착했다. 그녀에겐 매일 보는 집, 언덕, 들판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와이어스의 그림에서 그녀는 더 넓은 세상을 외치고 있는 듯하다. 미국 농가의 목가적 풍경 속에 묻어나는 인간의 세심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최근 영화 ‘미나리’에서 의상감독을 맡은 한국계 디자이너 수재나 송도 그림 속 크리스티나로부터 영감을 받아 극 중 모니카(한예리) 캐릭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림이 갖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활자로 느껴보고 싶다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책의 향기#크리스티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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