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드라마 제작자는 ‘이두사전’을 참고하세요”

용인=전채은 기자 입력 2021-04-21 03:00수정 2021-04-21 05:3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조선시대 생활사 연구 필수자료
‘이두사전’ 편찬한 이건식 교수
이건식 단국대 국문과 교수는 “표제어들을 형태소 단위로 더 세분화하고 예문을 시대별로 정렬하는 게 다음 목표”라며 “학교가 40여 년간 힘써 온 동양학 분야 연구에 기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용인=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조선시대 사람들은 무얼 두고 다퉜는지, 어떤 죄를 어떻게 벌했는지, 가정에서 재산은 어떻게 상속했는지 이런 생활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이두(吏讀) 연구가 필수입니다.”

이건식 단국대 국문과 교수(61)는 최근 발간된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의 ‘이두사전’(단국대출판부)을 편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5명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연구원의 이두사전은 표제 4237개와 이를 설명하는 용례 1만1913개를 수록해 지금껏 발간된 이두사전 가운데 최대다. 기존에 편찬된 사전의 2배가 넘는 분량이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표기법이다. ‘은 는 이 가’와 같은 각종 조사를 한자로 차용하고 어순을 우리말로 바꾸는 식이다.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해 한글 창제 후에도 조선 후기까지 관공서 행정문서와 민간 경제활동 등에 폭넓게 쓰였다. 이 교수는 “그동안 조선사 연구는 복잡한 해석 없이도 읽을 수 있는 한글 자료 위주로 이뤄져 왔다”며 “이것들만 봐서는 조선사의 절반밖에 밝혀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신라 향찰처럼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현하는 방식을 모두 이두의 일종으로 보고 사전에 포함했다. 이를 위해 고문서 등 총 1432종의 자료에서 이두 용례를 수집했다.

주요기사
예컨대 이두로 작성된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에는 조선시대 중죄인의 판결서가 수록돼 있다. 이 책을 통해 연구자들은 조선시대의 각종 사건사고가 어떤 식으로 입건됐으며, 증거 수집 및 조사 방식은 어떠했는지를 깊이 연구할 수 있다.

지주들의 전답 상속 기록이 적힌 이두 문서는 남성과 여성, 장자와 차자에 대한 조선 사회의 차별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조선 초기에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장남을 제외하곤 아들딸 사이에 차별이 없었음을 이두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이두사전이 조선시대 생활사를 연구하는 학자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영화를 제작하려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이두 연구에 몰두한 이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두가 우리말과 괴리된 현상이 한글 창제로 이어지는 하나의 단초가 됐다고 본다. 6, 7세기 삼국시대에 조성된 임신서기석에서 발견되는 초기 이두 표기는 우리말과 어순이 비슷했다.

신라에서 향찰이 널리 쓰일 때는 기존 이두 표기에 우리말 조사와 연결어미를 덧붙여 읽고 쓰기가 편리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조사나 연결어미가 사라지고 어순도 중국식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나는 집에 간다’는 문장을 이두로 옮길 때 ‘나 간다 집’으로 쓰는 식이다. 이에 따라 일반 서민들은 점차 이두와 멀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한문이 조선의 언어를 억압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창제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 독자 문자가 아닌 일본어와 같이 한문에서 파생된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겠지요.”

이두 표기 용례
예문: 나는 집에 간다

한자식 표현: 我(나는)往(간다)家(집에):주어+서술어+부사어

이두식 표현: 我+亦(조사 는 )

家+良中(조사 에 )+往:

주어+부사어+서술어

이두식 표현은 신라∼고려 초까지 향찰에 쓰인 이두 기준.


용인=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조선시대#생활사#연구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