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폐지”…역사 왜곡 ‘조선구마사’, 혼쭐난 이유

  • 뉴시스
  • 입력 2021년 3월 27일 0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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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조선구마사' 방송 2회 만에 취소
중국풍 소품부터 역사 왜곡 논란 도마
시청자 항의→기업들 줄줄이 광고 취소
반중 정서로 확산…박계옥 작가도 논란

SBS TV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 이후 후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방송 2회 만에 결국 문을 닫았다. 시청자들의 원성에 사과하며 결방 및 재정비 카드를 내밀었지만, 악화된 여론을 직격탄으로 맞으면서 폐지하게 됐다.

SBS는 지난 26일 ‘조선구마사’의 방송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첫 방송 이후 역사 왜곡 및 동북공정 논란이 일면서 한 주 결방을 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이다.

‘조선구마사’ 촬영은 현재 80% 가량 끝난 상황이다. SBS는 드라마 방영권료 대부분을 선지급해 경제적 손실이 우려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한다고 알렸다.

이후 일각에서 방송만 취소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제작사인 YG스튜디오플렉스와 크레이브웍스도 “제작은 중단됐다”며 “해외 판권 건은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업체와 함께 제작에 참여한 롯데컬처웍스는 가장 먼저 공동제작 및 부분투자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첫 방송 후 닷새 만에 전격 폐지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물론 광고주들까지 일제히 등을 돌리면서 코너에 몰린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시청자게시판에는 항의가 줄을 이었고, 방영 중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6일 기준 20만명을 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민원 폭주가 이어졌다. 제작 지원부터 단순 편성까지 기업들이 줄줄이 광고를 중단하면서 타격은 불가피했다. 촬영 장소를 협조한 지자체들도 서둘러 이를 철회했다.

특히 논란이 확산된 주된 요인으로는 국내에 높아진 반중 정서도 한몫했다. 최근 중국이 김치, 한복 등을 자국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동북공정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근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PPL로 중국 브랜드 비빔밥 제품이 등장해 해외 시청자들이 비빔밥을 중국 음식처럼 여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지난 22일 첫 방송에서 충녕대군(장동윤)이 서역에서 온 구마사제인 요한 신부 일행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에서 중국식 만두, 월병 등이 전파를 타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궁중의 무녀 무화(정혜성)의 의상이 중국풍이고, 배경 음악이 중국 전통 악기로 연주됐다는 등의 지적도 나왔다.
드라마 속 중국풍 소품과 의상 등으로 온라인에서는 중국 자본이 투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제작사 측은 “일부 의복 및 소품이 중국식이라는 지적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라며 “다만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라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선을 그었다.

역사 왜곡 논란도 일파만파 커졌다. ‘조선구마사’ 측은 방영 전 한국형 엑소시즘 판타지 사극을 내세우며 허구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실적 공포감을 위해 태종 등 실존 인물을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태종, 충녕대군, 양녕대군 등 실존 인물을 토대로 극을 이끌어가는 상황에서 해당 인물과 상황 등을 왜곡해 묘사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주이씨 종친회도 “조선왕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방영 중지를 요구했다.

‘조선구마사’를 집필한 박계옥 작가의 전력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박 작가가 쓴 tvN 드라마 ‘철인왕후’도 방영 당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철인왕후’는 중국 웹드라마 리메이크 방영권을 구매해 기획된 작품으로, 극 중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고 표현하고 풍양 조씨를 비하했다는 등 비판을 받았다. 최근 박 작가가 중국 콘텐츠 제작사의 한국법인이자 한중합작 민간기업 쟈핑픽처스와 집필 계약한 사실도 알려져 의구심을 높였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사상 초유의 폐지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장하게 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극 등 역사 고증 및 검수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JTBC 드라마 ‘설강화’도 방송 전부터 간첩 및 안기부 직원 캐릭터 미화 등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소품과 의복 등이 발견되면서 우리 사극이 맞냐는 의문이 제기됐고, 최근 동북공정 등 예민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반감이 확산됐다”며 “허구라고 해도 조선을 배경으로 한 만큼 기본적이고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번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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