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성선설’을 믿으면 순진한 거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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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조현욱 옮김/588쪽·2만2000원·인플루엔셜

소년 6명이 무인도에 고립됐다. 구출되지 못한 채 15개월이 흘렀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소년들의 비극적 결말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소외됐을 것이고, 다친 소년은 버려졌을 것이며, 아마도 서로를 해쳤을 것이다. 윌리엄 골딩은 소설 ‘파리대왕’(1954년)에서 어리고 순수한 소년들마저 그 본성은 추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달랐다. 1965년 6월 태평양을 표류하다 통가제도의 바위섬에 갇혔던 소년 6명은 15개월간 고립됐을 때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역할을 나눴다. ‘파리대왕’ 속 소년들은 불을 차지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이지만, 현실의 소년들은 힘을 합쳐 어렵게 피운 불을 1년 이상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와 유발 하라리가 각각 ‘이기적 유전자’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성악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악설을 뒷받침한 실험들이 왜곡됐음을 지적하고, 서로를 믿지 못할 때 모두가 권력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함을 주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1961년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은 이미 답이 정해진 실험이었다. 밀그램은 피험자가 타인에게 전기충격을 어느 수준까지 줄 수 있는지를 측정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험 10년 뒤 밀그램의 저서에 따르면 당시 전기충격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믿은 피험자는 56%에 불과했다. 연구진이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은 피험자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저자는 ‘방관자 효과’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캐서린 수전 제노비스 살인사건도 일정 부분 왜곡돼 있다고 지적한다. 1964년 3월 미국 뉴욕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죽어간 제노비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37명이 아니라 3, 4명의 이웃이었다면 즉각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건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게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건 용감하고 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성선설#휴먼카인드#파리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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