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코로나 시대, 글 속에서 새로운 2021년을 꿈꾸다

동아일보 입력 2020-12-26 03:00수정 2020-12-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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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들이 꼽은 ‘내년에 꼭 읽을 책’ 《우리에게 2020년은 역병(疫病)과 내홍(內訌)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일상을 잠식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는 사상을 위협한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켜켜이 쌓인 올해의 시간이 무엇을 남겼는지 지식의 창 너머를 바라본다. 국내 최초 전문 서평지를 표방하는 ‘서울리뷰오브북스(SRB)’ 편집위원 12인이 각자 내년에 꼭 읽고야 말겠다는 책을 뽑았다.》

● 강예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입식의 시대, 좌식의 집/조재모 지음·국학진흥원 교양학술 총서3/164쪽·1만4000원·은행나무

소파 위에 앉는 것이 아니라, 소파 아랫단을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아 있는 장면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입식 생활로 변화된 사회에서도 좌식의 관습은 지속하면서 우리의 거주 감각은 혼재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이 시기, 자기 몸에 새겨진 이 감각의 문화사와 건축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

‘신발을 벗는’ 여부는 바닥난방과 공기난방 같은 설비방식이 가른다. 난간, 창호, 천장, 신발을 신지 않는 바닥의 높이 같은 건축의 치수에도 개입한다. 무엇보다도 내부와 외부에 대한 인식의 경계에도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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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20세기 이전에 형성된 좌식의 공간이용 습성이 건축사의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담백하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책에서 사례로 든 건축의 도면과 사진을 찾아보면서 실제 의미를 새기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주요 방법이다.

●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화산도(전 12권)/김석범 지음·김환기 옮김/5488쪽·17만 원·보고사

긴 겨울이니 묵은 숙제를 꺼내 봐도 좋겠다. 재일 작가 김석범의 기나긴 장편 ‘화산도’를 검색해 본다. 2015년 완역된 이 소설은 마주칠 때마다 매력적이라기보다 부담스러웠다. 경(輕)장편이 유행하는 시절에 열두 권, 제주 4·3사건이라는 배경이며 남한 북한 일본의 국적을 모두 거부해 온 작가의 생애까지. ‘존중합니다, 하지만’이라는 인사로써 외면해 버리고 싶은 책이다.

이 작가의 단편에서 엿봤던 징글징글하도록 잔혹한 폭력과 끝끝내 닫혀 버린 탈출구를 열두 권 규모로 목격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혁명에 의한 허무의 초극’이 집필 동기라니. 그런 감각은 냉전기의 유물이 아닌가. 시끄러운 혼잣말 끝에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도통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평생 하나의 문제를 추구한 작가의 자취가 내 불안과 피로를 줄여 주리라 믿으며. 과연 2021년에 다 읽어낼 수 있을까.

●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앤 드루얀 지음·김명남 옮김/464쪽·2만2000원·사이언스북스

옛 명곡을 새롭게 해석해서 탁월하게 부르는 가수들이 있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도 그런 작품이 아닐까. 남편이었던 고 칼 세이건이 쓴 동명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굳이 떠올리고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 책은 온전히 아름답다. 광대한 우주로부터 극미한 세계로, 동서양 곳곳을 누비며 인류의 탄생부터 미래까지, 세상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이런 책은 잠시나마 우리에게 갑갑한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듯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저자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지식 자랑에 그치지 않고 뚜렷한 목적을 지향한다. 장구한 우주의 역사 속에서 티끌만큼의 시간 동안 존재했던 인간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경고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과 과학적 사고의 확산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호소다. 후반으로 갈수록 과도하게 감정에 기댄다는 느낌이지만 아주 거슬릴 만큼은 아니다.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뱀의식(Serpent Ritual)/아비 바르부르크 지음/출간 예정


언스트 곰브리치는 스테디셀러 ‘서양미술사’ 덕분에 유명한 반면, 곰브리치가 전기를 쓴 아비 바르부르크(1866∼1929)는 아직 독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바르부르크는 주로 대학의 바깥에서 활동하며 이미지 연구에 눈부신 족적을 남긴 괴인이다. 다나카 준(田中純)의 ‘바르부르크 평전’이 2013년에 한국어로 번역됐지만 아쉽게도 절판되었다. 조만간 바르부르크의 ‘뱀의식’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다고 하니, 2021년은 바르부르크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접속하기 좋은 해다.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바르부르크는 장자 상속권을 동생에게 넘기는 대신 동생은 형의 책값을 평생 내주기로 한다. 그 덕분에 바르부르크는 “아예 피해 다니거나 아니면 몇 년 동안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장서와 도서관을 구축한다. 손에 넣기 어려운 고가의 자료를 접할 때마다 나는 바르부르크와 그의 동생을 생각한다.

●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민중신학의 탐구/서남동 지음/664쪽·2만2000원·동연

처음 그의 글을 읽었을 때 느낀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페이지마다 사회와 신학이 부딪치고 정치적 영성이 분출한다. 민중신학은 유신의 어둠에서 태어난 한국의 독창적 사상이다. 안병무 사상이 유장하고 강직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다면, 서남동 언어는 천둥 치는 골짜기로 느닷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폭류(瀑流) 같다. 읽는 자의 실존을 여전히 뒤흔든다.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반(反)신학’을 표방하는 야인으로 변모하여 고초를 겪으며 남긴 전복적인 육성. 그 핵심에 민중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2021년 서남동을 다시 읽고자 한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불리지 않는 망각된 사람들. 괴로워하는 생명, 숲과 강물, 바다와 하늘. 이 모든 헐벗음의 어셈블리지가 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민중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은 채.

●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스티븐 그린블랫 지음·정영목 옮김/464쪽·2만3000원·까치

세계적인 셰익스피어 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은 주로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책을 쓰지만 가끔 셰익스피어를 벗어나 다른 주제의 책을 쓸 때는 일반 독자들을 열광시키곤 한다.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한 ‘책 사냥꾼’이 로마 시인의 사라진 책을 찾아 유럽을 뒤지는 이야기를 담은 ‘1417년, 근대의 탄생’이 그랬다.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흥미진진함으로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을 다룬 책.

지난해 한국어로도 번역됐지만 나는 아직 읽지 못한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은 그 다음 작품이다. 기독교의 핵심인 성경, 그중에서도 가장 첫 이야기인 아담과 이브라는 주제를 세속학자가 정면으로 공략하는 용감한 책이다. 세계 곳곳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고개를 들고 팬데믹으로 종교와 사회의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았던 올해, 그린블랫 같은 인문학자의 시각과 목소리가 그리웠다.

● 박진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패턴 인식과 머신 러닝/크리스토퍼 비숍 지음·김형진 옮김/852쪽·4만6000원·제이펍

기계학습의 다양한 기법을 설명한 책이다. 기계학습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핵심이며 여기에는 딥 러닝(deep learning)도 포함된다. 출간된 지 꽤 됐지만 이 분야의 기념비적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꾸준히 읽히고 있다. 베이지안적 관점에 입각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찍이 이 책을 읽어 보고자 시도했으나 수학적 기초가 부족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그 후, 최근 딥 러닝을 언어 연구와 처리에 활용해 보았는데 그런 실제적인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좀 더 원리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싹트게 마련이다. 그래서 다시 읽기를 시도했으나 여전히 이해가 어려웠다. 이 책의 품격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한 가지 위안이다. 최근 선형대수, 해석학, 베이지안 통계학 등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 이 책의 통독과 이해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사대부시대의 사회사-조선의 계급·의식·정치·경제구조/유승원 지음/496쪽·2만5000원·역사비평사


이 책은 조선 왕조의 전모를 스케치했다. 전문역사가이자 가톨릭대 명예교수인 저자의 과감한 시도다.

신분·계급, 이데올로기(성리학), 정치권력, 경제구조의 네 분야로 나눠 조선이 도대체 어떤 성격의 국가였고 사회였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아마도 각 주제마다 논쟁의 여지가 있고 아직도 학설이 분분할 것이다. 저자는 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설명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비교사적 시각을 과감히 도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신분제도를 유럽뿐 아니라 중국 일본과 비교했을 때 양반은, ‘상놈’은, 노비는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한번 책을 열어보시라. 자국(自國)사 연구도 일국(一國)사 틀로만은 더 이상 발전을 기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책이다.

● 송지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탄소 사회의 종말/조효제 지음/480쪽·2만5000원·21세기북스

기후변화는 진작 기후위기가 되었지만 지구인의 반응은 무기력에 가깝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상위 국가인 한국 역시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로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거시적, 장기적 현상인 기후변화를 그저 미래 세대의 문제로, 먼 나라들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걸림돌이 되어 왔다. 일부 전문가는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접근함으로써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기후위기를 생명권, 식량권, 자기결정권 등 인권이 침해되는 긴급한 현상으로 보고 대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조효제의 ‘탄소 사회의 종말’은 국내 서적 가운데 선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권 기반 접근을 소개한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인 ‘파리협정’에서부터 아직은 학계에도 생소한 최신 이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논의를 집대성한 점도 돋보인다.

●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호모 스페이스쿠스/이성규 지음/260쪽·1만7000원·플루토

‘뉴 스페이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건축에서 말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주를 뜻하는 스페이스다. 우주는 더 이상 일상과 무관한 장소가 아니라 기념품을 보관할 타임캡슐, 희토류를 캘 수 있는 광산, 더 멀리 떠나기 위한 정류장처럼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로켓 제작, 화물 배송, 기지 건설 등에 여러 민간 업체가 참여해 우주라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저자는 우주가 돈이 되는 시대를 살게 될 우리를 ‘호모 스페이스쿠스’라 칭하면서 뉴 스페이스로 가는 길목에서 인류의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우주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현황은 어떤지 정리하고 있다. 지구라는 우주선에 탑승해 있는 바람에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여행하게 돼 어리둥절해 있는 초보 호모 스페이스쿠스를 위한 안내서다.

●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가난의 문법/소준철 지음/304쪽·1만6000원·푸른숲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요양시설의 노인을 가장 잔혹하게 덮쳤다. 올해는 안타깝게도 ‘확진자’와 ‘사망자’로 주로 등장했지만 노인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더 깊고 넓게 논의돼야 할 주제다. 이 나라의 노인빈곤율과 노인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몸이 버티지 못해도 일해야 하고,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태반이란 얘기다.

‘가난의 문법’은 폐품을 주워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을 통해 이 고단함의 구조를 해부한다. 빈곤 여성 노인의 주름진 삶에 대한 서사와 노동조건 협상이 불가능한 재활용품 산업 구조 분석을 결합한 얼개가 흥미롭다. ‘1945년생 윤영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실험적 글쓰기가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저자의 바람에 어떻게 가닿을지 궁금하다.

●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1세기 사상의 최전선/김환석 외 21인 지음·이감문해력연구소 기획/328쪽·1만6000원·이성과감성


내년 여름에는 며칠 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종식된 뒤에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또 우리를 급습할까. 10년 뒤에는 기후변화의 파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위기의 국면에서는 세상의 일부가 파괴되지만, 새로운 세상이 이를 메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상을 이루는 관계가 다 사라져버리는, 인류가 쌓아온 현대문명이 그냥 무너져 내리는 위기를 겪는 것 같다. 작금의 위기는 기회를 동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에서 소개하는 사상가들은 ‘인간중심주의’의 오만이 지금의 위기를 낳았다고 진단한다. 동물, 자연, 기계, 인공지능(AI)과 로봇을 인간과 대등한 주체로 생각하고 인간이 더, 훨씬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법이 안 보일수록 문제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며, 이때 땅을 파는 도구는 여전히 사상이다.



#2021년에 꼭 읽을 책#서울리뷰오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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