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안에도 백두대간이 있다, 그러니 용기를 내시라[한국미술의 딥 컷]

김민 기자 입력 2020-09-25 03:00수정 2020-09-2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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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탄광촌의 화가’ 황재형
진실 찾아 들어간 탄광촌서 반평생 “어디든 희망이 없어지는 곳이 막장”
가로 5m 백두대간 20년 넘게 그려… 단순한 산 아닌 ‘한국인의 땀과 주름’
황재형, 백두대간, 496×206.5cm, 캔버스에 유채, 1993∼2004년. 작가는 눈보라치는 밤의 에너지와 용솟음치는 땅을 보고 이곳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고요한 풍경을 보고 실망하는데, 이후 ‘모든 것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십 년간 이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황재형
《예술은 박제된 장식이나 글로 된 관념이 아닌 삶에서 배태된다. 한없이 관념적으로 보이는 ‘다다이즘’도, 마르셀 뒤샹의 ‘샘’도 세계대전이 일으킨 허무가 낳은 예술이었다. 한국 미술사는 과연 우리들의 삶과 함께 흘러가고 있을까. 예술가 황재형(68)은 이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탄광에 뛰어들었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황재형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도마, 60×50cm, 캔버스에 유채, 1979년.
아버지의 자리, 227.3×162.1cm, 캔버스에 유채, 2011∼2013년.
시계(속박된 시간), 58×58cm, 캔버스에 유채, 1984년.
1982년 9월. 서른 살 황재형은 아내와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 탄광촌으로 향했다.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안고 있었다.

대학에선 밤낮 술을 먹으며 세상이 뒤집어지는 이야길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가장 뜨거운 진실을 찾겠다며 그는 현장으로 향했다. 1년만 있어보자고 다짐한 것이 길어져 작가는 지금도 태백에 살고 있다.

그가 탄광에 간 것은 단순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산업으로 만들어진 포장을 벗겨낸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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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은 “희망이 없어지는 곳이 바로 ‘막장’이며, 광부는 서울이나 부산에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로 5m, 세로 2m의 대작은 ‘백두대간’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1993년 시작해 20년 넘게 그리고 있다. 풍경을 감상하려는 그림이었다면 오랜 세월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림 속 백두대간은 우리가 휴양하러 찾는 피안의 자연이 아닌 인간의 조건이다. 바다 속 땅이 용솟음칠 때부터 인간이 묵묵히 흘려온 땀과 역사가 담긴 거대한 몸이다.

하모니카 나고야, 100×240cm, 캔버스에 머리카락, 2017년. 태백의 미용실을 다니며 모은 머리카락을 붙여 열악한 사택촌 풍경을 그렸다.
세상은 황재형을 ‘탄광촌의 화가’라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산은 산이 아니고, 광부도 광부가 아니다. 단순한 기록을 위한 그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미술의 문을 연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생 빅투아르 산’이 ‘개별성의 산’이라면 황재형의 산은 ‘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에서 배어 나온 산이다.

우뚝 솟아 굽이치는 산맥의 힘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두터운 물감에 담은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속에도 장엄한 백두대간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황재형 작가::
△1952년 전남 보성 출생
△1982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강원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
서울 덕수미술관 ‘임술년 창립’전
△1991년 서울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
△2010년 서울·뉴욕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
△2013년 전북도립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 ‘삶의 주름, 땀의 무게’
△2017년 강원 양구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탄광촌#화가#황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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