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 재즈계의 대모 故박성연 미완성곡 ‘가을의 노래’ 내달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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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별세한 재즈 보컬 박성연 씨(향년 77세·사진)의 미완성 노래가 다음 달 공개된다.

원로 재즈 베이시스트 차현 씨(69)는 “박 선생이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던 곡 ‘가을의 노래’를 9월 초에 CD와 디지털 음원으로 낼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가을의 노래’는 차 씨가 작사, 작곡, 편곡해 지난해 박 씨에게 건넨 곡이다. 고인은 지난해 9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차 씨에게서 ‘어느 가을날’이라는 신곡을 받았다. 처음 제목은 ‘디바의 가을’이었는데 너무 민망해 제발 디바(빼어난 여성 가수)란 말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열심히 연습해 꼭 CD로 찍어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 인터뷰는 고인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됐다.

차 씨는 “함께 ‘가을의 노래’ 가창 연습을 한 직후인 지난해 10월에 박 선생이 급히 중환자실로 이송되고 말았다. 코로나19까지 터져 면회마저 제한돼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상태가 위중해지자 차 씨는 후배 재즈 가수인 최용민 씨(62)에게 이 곡의 가창 녹음을 대신 부탁했다. 두 달 전 녹음을 마쳤지만 고인은 이미 병환이 깊어져 끝내 완성본을 들어보지 못했다.

25일 기자가 먼저 들어본 ‘가을의 노래’는 고인의 쓸쓸한 퇴장을 예견한 듯하다.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지나가는 그 여름이 아쉬워 가을비가 저리도 오나/찬란했던 젊은 날의 뜨거운 날들 풀잎처럼 시들어 가고….’

빗소리 같은 드럼의 브러시(brush), 고즈넉한 트럼펫 연주로 채색한 애잔한 재즈 발라드다. 차 씨는 이 노래를 담은 자신의 2집 제목을 아예 ‘가을의 노래’로 짓고 앨범 속지에 고인과 찍은 사진 및 작품의 변을 실었다. 그는 “2018년 박 선생의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보고 노래를 하실 수 있을 때 신곡을 취입하게 도와드리고 싶어 곡을 쓰게 됐다”고 했다.

‘가을의 노래’를 담은 차현 2집 표지.
‘가을의 노래’를 담은 차현 2집 표지.
고인은 한국 재즈계의 대모다. 1978년 클럽 ‘야누스’(현 ‘디바야누스’)를 세워 운영했다. 토종 자본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재즈 라이브 클럽이다.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수십 년간 국내 연주자들의 무대를 지켰다. 차 씨도 야누스 출신이다.

“1989년 그곳에서 재즈를 시작했습니다. 제게 야누스가 없었다면 이렇게 연주자로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20일 박 선생을 마지막으로 뵀는데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맞아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좀 더 서둘러 곡을 드리지 못한 것이 한(恨)”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재즈를 굳게 지켰기에 쉽지 않을 길을 걸었습니다. 늘 큰누나처럼 씩씩하던 박 선생의 기상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재즈 보컬#박성연#미완성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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