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네 플루드 “스릴러가 인기 있는 건… 인간이 가진 ‘악의 속성’ 때문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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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 출간해 유럽 홀린 심리학자 헬레네 플루드 인터뷰

악행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걸까, 아니면 평범한 이들에게도 그
가능성이 잠재돼 있는 것일까. 헬레네 플루드는 “모두가 이런 질문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스릴러가 인기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숲 제공
악행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걸까, 아니면 평범한 이들에게도 그 가능성이 잠재돼 있는 것일까. 헬레네 플루드는 “모두가 이런 질문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스릴러가 인기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숲 제공
1982년생 노르웨이 작가의 데뷔작이 최근 유럽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출간된 스릴러 소설 ‘테라피스트’다. 장르문법의 틀을 지키면서도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응집력 있게 묘사하는 새로운 전개로 “북유럽 스릴러의 세대교체”란 평을 받았다. ‘밀레니엄 시리즈’ 스티그 라르손을 발굴해 영어권에 처음 소개했던 영국의 스타 편집자 크리스토퍼 매클호스는 “독창적 아이디어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진짜 작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화제의 중심에 선 이 작가 헬레네 플루드는 이력도 특이하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심리학 박사이고 오슬로 대학병원의 시니어 연구원으로 폭력과 트라우마로 인한 수치심, 죄의식 등을 연구한다. 최근 본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작가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구상하는 걸 좋아했지만 이런 게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며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는데 그때부터 온갖 이야기로 머리가 윙윙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테라피스트’도 이때 나온 작품. 갑자기 남편이 실종돼 버린 심리치료사의 심경 변화와 사건의 전모를 촘촘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엮어간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누구나 느껴봤을 평범한 불안에서 얻었다. 그는 “가족, 친척 등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오길 기다리는 심정을 생각해봤다”며 “대부분은 늦더라도 연락을 받지만, 만약 그 상황이 신문에 실린 실종 기사의 일부가 된다면 이후 사건은 어떻게 전개되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소설가로서 첫 작품으로 스릴러를 택한 이유는 “인간 심리와 관계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악(evil)의 본성, 악의 심리학이 정말 흥미롭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는 범죄를 저지르고, 때론 그것이 일어나게끔 방조하거나 심지어 묵인하는지가 작가로서 정말 궁금한 주제였어요. 스릴러란 장르가 인기 있는 건 개인의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런 ‘악의 속성’에 대해 모두가 품고 있는 질문을 계속 던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작가는 여름철 읽을 만한 스릴러로 길리언 플린과 힐러리 맨틀(스릴러는 아니지만 스릴러만큼 재미있다며)의 작품을 추천했다. 한국 독자들은 대개 여름 휴가철 스릴러를 찾지만 북유럽은 으스스한 범죄소설로 정평이 난 곳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작가는 “좋은 질문!”이라며 “이렇게 작고 평화로운 나라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살인, 범죄에 대해 쓰는 건지 나도 계속 궁금하던 바였다”며 유쾌하게 답변했다.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성 있는 사회가 인간의 어두움이나 상실의 위험을 탐색해보는 데 안전한 기반이 돼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어쩌면 그저, 스칸디나비아의 날씨가 너무 춥고 어둡다 보니 다들 그런 우울한 생각만 하는 걸 수도 있겠죠!”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이지만 그는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 고되지 않다고 말했다. “애 엄마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데 글을 쓸 때는 혼자가 아니냐”며 “이건 레크리에이션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딱 한 챕터만 더 읽자’ 하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되는 몰입을 한국 독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바라건대, 몇 명의 밤은 지새우게 할 수 있겠죠?”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노르웨이 작가#심리학자#헬레네 플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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