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기억 불러내는 향기, 삶의 고단함 위로해주죠”

손택균 기자 입력 2020-08-11 03:00수정 2020-08-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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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에세이집 ‘나는 네Nez입니다’ 낸 조향사 김태형씨
예술가-과학자 소양 겸비한 조향사의 매력에 빠져 佛 유학
작년 자신의 향수브랜드 만들어
조향사 김태형 씨는 향수를 쓰지 않는다. 몸의 냄새를 최대한 없애야 원료를 적확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향 작업을 하다 보면 도중에 길을 잃기 쉽다. 향수제품 설명에 길잡이가 돼 준 평가자 이름을 함께 밝히는 건 그 때문이다. 음반 작업에서 프로듀서가 맡는 역할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저서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년)에서 “예술은 마음을 소통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심상을 충실히 담아낸 매개물은 무엇이든 예술일 수 있다.》

최근 향수 에세이집 ‘나는 네Nez입니다’(난다)를 낸 조향사 김태형 씨(26)는 “아름다운 공간이나 자연을 마주했을 때 돋아난 감정과 생각을 향기로 표현해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nez는 코를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다. 향수의 본산인 프랑스에서는 실력을 널리 인정받는 조향사를 ‘르 네(le nez)’라고 부른다.

“성적 매력과 유혹의 키워드를 강조하는 주류 향수 시장 추세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물론 그런 개인적 성향은 의뢰인으로부터 발주 받은 제품을 충실히 만들어내야 하는 향수 생산자로서의 업무와 별개의 문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향수를 찾아서 사용하거나 특별한 이를 위한 선물로 건넨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향수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 ‘향수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김 씨 역시 그저 향수가 무엇인지 정도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고등학생이었다.

“소설가인 어머니(함정임)의 은근한 바람과 반대로 문학보다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품고 있었어요.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과학책을 넘겨보다가 한 귀퉁이에 있던 이색 직업을 소개하는 토막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향사는 예술가적 기질과 과학자의 소양을 겸비한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 그때 아 이거다, 싶었죠.”

열아홉 살 때 프랑스 파리로 떠난 그는 향수학교인 에콜 쉬페리외르 뒤 파르A과 베르사유 이집카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한 투자자의 의뢰로 새로운 향수를 제작하는 일을 진행하다가 지난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자신의 향수 브랜드인 ‘에트르라(^etre-l‘a)’를 만들었다. ^etre l’a는 프랑스어로 ‘여기 있다, 존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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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적게는 20여 가지, 많게는 100여 가지 원료가 사용됩니다. 원료들의 조합이 어떤 효과를 이끌어낼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길을 후각으로 한 발 한 발 더듬더듬 찾아나가는 게 조향사가 하는 일이에요. 목표한 심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향을 만들어야 하죠. 그런 과정이 그 향수에 존재할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가 내놓은 세 가지 향수는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깊은 인상을 받은 세 공간의 기억을 담은 것이다. 그는 “공간마다 특유의 향취를 품고 있다. 잠시 머물렀던 어떤 거리의 기억을 돌이키게 하는 향기가 그곳을 떠나온 후에도 문득 되살아나 삶의 고단함을 덜어주곤 한다. 그런 위로가 있기에 향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기에 대한 감흥과 호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수를 선물하고 싶다면 혼자 짐작해서 고르지 말고 시간을 내서 그 사람과 함께 다양한 향수를 맡아 보며 직접 선택하도록 해보세요.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내면으로 훌쩍 가깝게 다가가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겁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나는 네nez입니다#조향사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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