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못본 것 들으니깐 보여”…귀로 읽는 오디오북 ‘낭독의 세계’

민동용기자 입력 2020-08-05 22:05수정 2020-08-0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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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요나스 요나손이고 내 입장을 설명드리고자 한다. 나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속편을 쓸 뜻이 전혀 없었다.”

성우 구자형 씨(55)가 낮고 포근한 목소리로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자 주변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어 성우 조경아 씨(44)가 박완서 선생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중 남성과 여성의 대화를 읽어 내려가자 분명 남성의 음성은 아닌데도 두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각각 30년 차, 9년 차 성우이면서 현재 오디오북 녹음을 하는 두 사람을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은 올해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를 200억 원대로 보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세다. 두 성우는 국내 오디오북 플랫폼 업체 중 스웨덴계 스토리텔과 작업하고 있다.

‘텔레토비’ ‘뽀로로’의 내레이션 등으로 유명한 구 씨나 ‘다큐프라임’ 같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을 해온 조 씨 같은 베테랑 성우들에게도 오디오북 녹음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과 준비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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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쪽 분량의 ‘핵을 들고 도망친…’ 오디오북 플레이타임은 9시간 20분인데 완독에 13시간 40분 걸렸습니다. 준비 시간까지 약 60시간 걸렸습니다. 가성비가 좋은 분야는 아니지요. 하하.”(구 씨)

사진 박영대 기자
“책 한 권을 평균 세 번 읽지만 초기에는 여섯 번 읽었어요. 전체 내용 파악, 묶음으로 큰 흐름 숙지, 세밀하게 분석, 캐릭터 특성 파악, 다시 전체 분석, 낭독하기 전 읽을 분량만큼 다시 읽었어요.”(조 씨)

오디오북은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며 서술형 문장을 장시간 편안하게 읽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강조하는 평소 ‘습관’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더빙할 때는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특정 부분에 강세를 주는 등 ‘힘’을 줘야 했지요. 그래서 오디오북 낭독 초기에는 ‘힘을 좀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조 씨)

“쓸데없이 조사(어미)를 강조하는 버릇을 지적 받았어요. 읽을 때 ‘~다’ ‘~다’를 세게 읽는 거예요. 좀 심하면 ‘따따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체질을 바꾸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구 씨)

오디오북은 예전에는 내레이션 따로, 남녀 캐릭터 따로 식의 ‘오디오 드라마’처럼 제작했지만 요즘은 성우 한 명이 남녀 캐릭터를 다 표현하는 1인 낭독이 주류다.

“낭독의 큰 기둥은 화자, 내레이터 같아요. 목소리를 변조해 남성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고 할머니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들려주듯 캐릭터의 특징과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면 남성으로 들으시더라고요.”(조 씨)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이 실사 영화 ‘라이언킹’보다 감정 표현을 더 잘한 것처럼 소리도 오토튠을 써서 제가 여자 목소리로 ‘피치업’한다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캐릭터 안의 알맹이(정서)라는 뼈대에 제 상상력을 붙여 만들어낸 소리가 중요한 거죠.”(구 씨)

두 사람은 오디오북 업계에서 ‘수요’가 많은 성우다. 팬덤도 형성돼 ‘성우계의 마법제야’ ‘글이 아니라 사람이 들린다’ ‘책을 온몸으로 상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같은 독자 반응이 줄을 잇는다.

“오디오북은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해석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청자 혹은 독자의 감정과 정서를 건드려 마음이 따뜻해지게 하죠.”(구 씨)

“북적대는 지하철에서도 ‘나만의 시공간’에서 책을 들을 수 있고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책 한 권을 들을 수 있어요. 눈으로 읽었을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들으니까 보인다는 독자도 있지요.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어요.”(조 씨)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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