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뮤지컬 데뷔, '뮤지컬돌'로 성장
'모차르트!' 10주년 기념 공연...8월23일까지
2010년 1월26일은 한국 뮤지컬계의 분기점으로 통하는 날 중 하나다. 가수 겸 뮤지컬배우 김준수가 뮤지컬 ‘모차르트!’를 통해 뮤지컬에 데뷔한 날이다.
김준수는 ‘뮤지컬돌’(뮤지컬+아이돌)의 상징이다. 매력적인 쇳소리가 깃든 ‘철성(鐵聲)’을 보유한 그는 가창력은 물론 클라이맥스에서 객석을 집어삼킬 만한 카리스마, 그리고 이미 정평이 난 춤 실력으로 뮤지컬에 특화된 배우라는 평을 듣는다.
‘지킬앤하이드’로 유명한 미국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자신의 다른 뮤지컬 ‘드라큘라’에 출연한 김준수 버전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세계 다른 곳의 ‘드라큘라’ 배우들에게도 그의 영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김준수는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예그린뮤지컬어워드 남자인기상, 골든티켓어워즈 관객투표 인기상과 뮤지컬 남자배우상,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 남우주연상과 인기스타상, 더뮤지컬어워즈 신한카드 인기스타상, 뉴시스 2019 한류엑스포 대상 등을 받았다.
김준수 이전에도 뮤지컬에 데뷔한 아이돌은 있었다. 그런데 그의 뮤지컬계 등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업계 판도를 바꿨다. 실력 있는 K팝 아이돌들의 뮤지컬 진출 판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줬다는 것이 첫 번째, 아직 산업화가 덜 된 뮤지컬계에 대중음악팬과 한류 팬을 끌어들여 시장 자체를 키웠다는 것이 두 번째다.
내달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모차르트!’ 1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하면서 역시 많은 역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공연계에 세종문화회관의 안정된 방역과 더불어 관객들이 공연장을 믿고 찾을 수 있게끔 이끌고 있다. 한층 더 안정된 연기력으로 객석에 위로를 건네고 있다.
최근 수송동에서 만난 김준수는 “10년 전에는 기술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기술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감성을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수가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한 ‘모차르트!’로 세종문화회관에 오른 건 꼭 10년 만. 2011년 성남아트센터 ‘모차르트!’ 앙코르 공연에 올랐고, 그간 ‘디셈버 : 끝나지 않는 노래’와 ‘엑스칼리버’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밟긴 했다. 하지만 그간의 숙성을 증명하기 위해 10년 전 같은 장소에서 공연한 같은 작품은 더할 나위 없다.
“매번 ‘모차르트!’를 하면서 위안을 받았어요. 처음 출연했을 당시에는 제 안에 진 응어리를 풀어줬는데, 지금은 위안을 받고 있죠. 저와 똑같이 데뷔를 한 작품이라, 더 감격이에요.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상황이 좋지 않잖아요. 물론 방역 절차를 철저하게 하고 있지만 번거로움을 감당하시면서 발걸음 해주시는 관객분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죠.”
그간 김준수는 ‘천국의 눈물’,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을 통해 현실적인 연기도 선보였지만 주로 토드(죽음), 드라큘라, 도리안 그레이, ‘데스노트’ 탐정 엘 등 그로테스크한 초현실적 캐릭터로 호평을 들었다. ‘저런 세상의 이야기도 있구나’는 감동에 무게감이 실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엑스칼리버’의 아서왕, 그리고 다시 출연한 ‘모차르트!’에서 성장 서사를 보여주며 현실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도 탄력이 붙었다.
뮤지컬 무대는 김준수에게 남다른 성장서사 그 자체다. 전 소속사와 전속계약 분쟁으로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을 때 뮤지컬배우로 변신,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다수의 미디어를 포함 그를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았을 때 받아준 곳이 바로 뮤지컬이었다.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가 “왜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지 않나요?”라는 울부짖음은 결국 김준수의 것이었다.
“뮤지컬은 적어도 공정하게 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게 해줬어요.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줬죠. 그래서 위안을 받은 것 같아요. 사실 뮤지컬 시작 전에는 감히 뮤지컬 출연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이돌 가수들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출연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시작했던 때죠.”
‘모차르트!’ 출연을 제안했던 EMK뮤지컬컴퍼니에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전달했던 이유다. “두렵고 제가 잘할 수 있을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별이 총총 떠 있던 어느날 새벽, EMK에서 전달해준 대본을 그냥 들춰봤는데 넘버 중 하나인 ‘황금별’ 가사에 빠져버렸다. 모차르트에게 자유의 기회를 열어준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이 그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며 불러주는 노래. 기존 커튼콜 곡인 ‘나는 나는 음악’ 대신 코로나19 시국에 관객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이번 시즌에 커튼콜 곡으로도 뽑힌 넘버다.
“황금별이 떨어질때면 / 세상을 향해서 여행을 떠나야 해 /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 저 높은 성벽을 넘어서 /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 곳으로 / 저 세상을 향해서 날아봐 / 날아 올라.”
“모차르트는 천재라는 점만 빼고 저와 상황이 다 비슷한 거예요. 가사를 보고 눈물이 났죠. 성벽을 뚫고 뛰쳐나가서 날아오르고 싶은 건 제 마음이었거든요. 사실 당시 농사 짓고 살자는 이야기도 했던 거 같아요. 그냥 절 있는 그대로 봐주시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죠. 모차르트 역을 빌려서 세상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겠구나는 생각에 용기를 냈죠.”
뮤지컬 데뷔하는 날, 처음 동방신기로 데뷔했을 때와 비슷하게, 아니 더 떨렸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저 혼자니까요. 그 때는 그룹이었고 옆에 멤버가 있어서 의지를 했지만 뮤지컬 데뷔는 혼자니까 너무 떨렸어요.”
그래서 이미 5년 전에 자신이 계속 뮤지컬에 출연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쑥스러워했다. “객석이 매진됐다고 들뜨지 않았어요. 객석이 차지 않았다고 불행해지도 않았죠. 제 상황은 누가봐도 감사해야 하는 인생이기 때문이에요. 다만제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상심했죠.”
뮤지컬 출연을 년 단위로 계획해온 것이 아니라 매번 “이 작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라며 걱정을 해왔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우여곡적을 겪고, 제 자신도 탄탄해지고, 점차 배워가면서 뮤지컬을 더더욱 사랑하게 돼 놓을 수 없는 끈이 됐다”고 애정 어린 고백을 했다. “처음에는 형, 누나만 있었는데 이제 제가 형, 오빠가 됐다”며 미소지었다.
5만석 일본 도쿄돔 등 대형 아레나에 숱하게 올랐던 그지만 몇천석 뮤지컬 공연장 무대에 서는 것이 더 떨린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콘서트는 잘하는 못하든 제가 책임을 지면 되잖아요. 그런데 뮤지컬은 다른 배우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저 때문에 어긋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압박감이 있고, 그 부담감은 게임이 아니죠.”
책임감 있는 든든한 뮤지컬배우로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김준수는 갈수록 다재다능해지는 뮤지컬배우들을 보면서 뿌듯하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성악 위주의 획일적인 모습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랩 하는 뮤지컬도 있고 R&B처럼 부르는 뮤지컬도 있고, ‘서편제’ 같이 국악하는 뮤지컬도 있고 다양해졌죠. 말 그대로 종합예술에 어울리는 거죠. 한 종목이 아니라 UFC(종합격투기대회)처럼 태권도, 무에타이 등 다양함이 한 무대에 서는 느낌으로 변했어요.”
여러 아이돌들이 뮤지컬 활동에 나서는 모습도 뿌듯하다. 김준수는 동방신기 활동 당시 일본에서 한국 남성 아이돌은 일본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불문율을 깬 가수이기도 하다. 이후 다른 한류그룹들도 잇따라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그런 상황들이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해요.”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것과 뮤지컬에 동화되는 상황의 양쪽 줄타기를 점차 발전해온 것 같다는 김준수는 앞으로 꼭 주연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일찍부터 생각해왔다. “이미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거든요. 나중에 모차르트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면 정말 기쁠 거 같아요. 뮤지컬 연출은 언제가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배우로서 10년을 잘 일구어온 만큼,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그런데 김준수는 “바로 앞의 일도 내다볼 수 없다”며 신중했다.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살아왔거든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성공 가도를 달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뮤지컬에서도 저를 찾아주시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매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고, 부끄럽지 않게 여기까지 왔죠. 그래서 제 자신이 조금은 기특한 부분도 있어요. 하하. 하지만 앞으로 10년도 알 수 없어요. 먼산을 보는 것은 사치에요. 무사히 완주하기를 바랄 뿐이죠.”
톱 뮤지컬배우로 자리매김했으면서도 겸손한 김준수는 지금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뮤지컬에 잠시 눈 돌린 아이돌이 아닌 뮤지컬을 정말 사랑하는 뮤지컬배우로서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인정 받고 싶기 때문에, 뮤지컬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했고, 그래서 최고의 뮤지컬을 하고 싶었죠. 열과 성의를 다해온 것에 대해 인정을 해주신 10년이 아닐까 합니다.”
김준수의 그런 열정과 성의는 그동안 출연해온 8편의 출연작이 모두 국내 초연이라는 사실이 증명한다. 자신에게는 새로운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해온 노력 자체가 용기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가 출연해온 뮤지컬 타임라인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2010년 ‘모차르트! = “왜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지 않나요?” 작품을 축약하는 이 대사는 당시 자유를 갈망하는 김준수의 심경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자유를 표상하는 록의 찢어진 청바지, 힙합의 레게머리 등은 자유를 갈망하는 모차르트 몸짓에 현대적인 해석의 상징을 더했다.
▲2011년 ’천국의 눈물‘ =가수 조성모가 2000년 내놓은 3집 타이틀곡 ’아시나요‘의 뮤직비디오를 모티브로 삼은 창작 뮤지컬.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병사와 미군 장교, 베트남 여성의 순탄하지 않은 사랑을 그렸다. 한국군 ’준‘을 맡은 김준수는 세세한 감정 표현력을 보여주며 뮤지컬배우로 자리매김해나갔다.
▲2012년 ’엘리자벳‘ = 엘리자벳을 평생 따르며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토드‘(죽음) 역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김준수는 자신의 별칭인 시아준수, 토드를 합친 ’샤토드‘로 불리며 이 캐릭터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김준수는 공연연출가인 지욱을 맡았다. 김광석의 애틋한 곡들은 김준수의 철성이 섞인 애절한 목소리를 만나 새 생명력을 얻었다. 20대와 40대를 오가는 연기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2014년·2016년·2020년 뮤지컬 ’드라큘라‘ = 400년동안 사랑하는 여자를 잊지 못하는 드라큘라로 변신, 호평을 들었다. 상대역과 차진 호흡으로 애절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내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도 김준수의 보컬에 척척 감겼다. 2016년, 2020년에서는 더욱 깊어졌다.
▲2015년 ’데스노트‘ = 뛰어난 추리력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명탐정 ’엘(L)‘을 맡았다. 김준수는 뛰어난 가창력에 들숨과 날숨을 더 불어넣었는데 범인을 잡고자 하는 엘의 간절한 욕망이 자연스레 반영됐다. 기괴하고 선하면서도 내면에는 또 다른 욕망이 꿈틀대는 엘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2016년 9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 원작인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추상적인 내용으로 무대화가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의 귀족 청년 ’도리안’‘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향한 탐욕으로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바꾸게 되는 충격적인 이야기. 김준수는 그간 ’엘리자벳‘의 ’토드‘,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데스노트‘의 ’엘(L)‘ 등 추상적인 캐릭터에서 발군의 역량을 뽐내왔는데 도리안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라는 수식에서 보듯, 김준수의 아이돌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장면들은 팬들을 현혹시켰다.
▲2018년 12월 ’엘리자벳‘ = 군 복무를 마친 뒤 뮤지컬 복귀작. 2012년 초연, 2013년 재연 당시 선보였던 샤토드의 명불허전 귀환이었다.
▲2019년 ’엑스칼리버‘ = 영국의 건국 신화를 담은 ’아서왕 이야기‘가 바탕이다. 평범하게 살다가 왕의 운명을 힘들게 받아들이는 아서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용의 기운을 타고 난 그는 순간마다, 불 같은 성격을 드러낸다. ’용의 불길을 다스려 숨결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런 그의 성정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서는 성장한다. 동시에 김준수의 성장도 도드라진다. 아서는 가창력뿐만 아니라 내면의 연기력까지 필요한 캐릭터인데, 김준수는 공연의 전체 리듬을 파악하고 연기 톤의 강약을 조절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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