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놀라운데 쓸모없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김민 기자 입력 2020-04-25 03:00수정 2020-04-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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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사피 바칼 지음·이지연 옮김/468쪽·1만8000원·흐름출판
1947년 공개된 즉석 인화 카메라 폴라로이드는 30년간 업계를 장악했다. 앤디 워홀(사진)의 팝 아트도 모두 폴라로이드로 만들었다. 그러나 후속작인 ‘폴라비전’은 “경이롭지만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흐름출판 제공
‘경쟁자는 뒷목을 잡게 하고 고객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기업의 혁신은 어떻게 이뤄질까.’

최근 몇 년간 이 문제에 관한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노키아는 변화를 외면했고, 이케아는 ‘경험’을 강조했으며, 애플엔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가 있었다는 식의 분석이다. 저자는 말한다.

“높은 주가(株價) 실적을 가진 기업들의 공통점을 찾아 성공 팁을 뽑아내겠다는 것은 마치 방금 로또에 당첨된 사람에게 로또 살 때 무슨 색 양말을 신고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물리학자이자 바이오업체를 세운 저자는 이 같은 사후약방문식 분석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단서를 찾아 모델과 가설을 세우는 물리학처럼 기업의 혁신을 이뤄낸 조직 문화도 ‘구조(시스템)’를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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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룬샷(loonshot)과 상전이(相轉移)다. 혁신의 씨앗인 룬샷은 “제안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지만 전쟁 의학 비즈니스의 판을 바꾼 아이디어”를 가리킨다. 룬샷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불완전하고 기이한 모습을 갖고 있다.

이 책의 독특함은 룬샷을 남발하는 기업도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애플 초기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맥)를 연구하던 그룹은 ‘예술가’라며 칭송한 반면 나머지 조직은 ‘평범한 해병’ ‘멍청이’라고 일축했다. 두 그룹 사이의 적대감이 심해서 두 건물 사이 샛길을 비무장지대라고 부를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맥은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잡스는 쫓겨났다.

20세기 사진의 역사를 바꾼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1946년 즉석카메라를 비롯해 끊임없는 연구로 수많은 ‘제품형 룬샷’을 만들어낸 에드윈 랜드는 “노벨상을 받아도 충분할 정도”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 혁신에만 치중한 나머지, 즉석 인화 영화기기인 ‘폴라비전’을 만들었지만 “경이로우나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폴라비전은 기술적으로 완벽했지만 가격이 비싸 실용성이 없었다. 더 결정적인 건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이었다. 그는 군사작전을 위해 인공위성에 사용할 디지털 카메라 개발을 도우면서 누구보다 먼저 그 쓸모를 알았지만 상업적 가능성은 무시했다.

저자는 이 두 사례를 통해 룬샷을 리더가 직접 고르고 평가하는 ‘모세의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외면받기 쉬운 룬샷이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잭팟’의 기회를 만나게 해주는 조직의 구조, 바로 상전이다.

상전이란 온도, 압력 같은 외부 변수의 영향을 받아 물질이 액체 고체 기체 등의 다른 형태로 변하는 단계를 가리킨다. 이상적인 조직은 방향 잃은 룬샷의 덫에 걸려 혼돈에 빠지거나(액체), 관성에 젖어 룬샷을 외면(고체)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리더는 ‘예술가’와 ‘해병’ 그룹이 따로 또 같이 협력하도록 관리하는 ‘세심한 정원사’가 돼야 한다. 12년이 흘러 다시 애플로 돌아왔을 때 잡스는 애니메이션의 혁명을 가져온 ‘픽사(Pixar)’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니 아이브 같은 예술가와 팀 쿡 같은 병사를 똑같이 사랑하는 법을 터득한 상태였다.

결과주의적 사고를 벗어나 시스템적 사고로 혁신을 설명해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신약 개발, 세계 체스 챔피언 등 사례도 풍부하다. 빌 게이츠는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는 책’이라 추천했으며 지난해 블룸버그 선정 최고경영자(CEO) 최다 추천 도서에 올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룬샷#사피 바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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