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나온 ‘3000년전 현실’… 국립중앙박물관 ‘에트루리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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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전 번성했던 伊 고대국가… 석관 조각-화려한 장신구 시선 압도

에트루리아의티니아(그리스의제우스)상.국립중앙박물관제공
에트루리아의티니아(그리스의제우스)상.국립중앙박물관제공
바닥에 투영된 지중해의 푸른 바닷길을 건너면 기원전 4세기 말 조각한 저승의 문지기 ‘반트’ 석상이 정면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전시실 안은 죽음의 세계가 아니다. 유물 상당수는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지만 오히려 현세 지향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에트루리아인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은 10월 2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연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전에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고대 국가. 기원전 10세기경부터 1000년 가까이 지속한 지중해 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특하고, 특히 권력과 종교적 상징에서 로마 문화에 큰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삶의 어떤 충만함을 가지고, 자유롭고 즐겁게 숨 쉬도록 내버려둔다. …즉, 편안함, 자연스러움,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 지성이나 영혼을 어떤 방향으로도 강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익숙한 D H 로런스(1885∼1930)가 사후 출간된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1932년)에 남긴 글이다. 에트루리아의 기원과 언어, 종교는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무덤 벽화와 부장된 유물을 통해 그들이 시와 음악, 무용, 연회를 즐겼다는 걸 알 수 있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표현한 에트루리아의 유골함. 마차를 탄 망자와 악기 연주자, 경호원, 운구자 등으로 이뤄진 행진 행렬을 표현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표현한 에트루리아의 유골함. 마차를 탄 망자와 악기 연주자, 경호원, 운구자 등으로 이뤄진 행진 행렬을 표현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시에 보이는 에트루리아인들은 유골단지에 자신들의 소박한 오두막을 묘사했고, 유골함에 저승으로 가는 개선 행진을 조각했으며, 석관 뚜껑에는 여전히 비스듬히 누워 술잔을 들고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남겼다. ‘죽음 뒤에도 즐거움은 여전할 것’이라 믿었을 터이니, 필경 살아서도 유쾌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전투용 정강이 보호대는 실용성보다는 용사의 멋을 추구했는지 종아리 근육의 굴곡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금세공의 달인이기도 했다. 황금 귀걸이, 월계관을 비롯한 장신구는 세밀한 표현과 기교, 화려함이 압도적이다.

전시는 이 밖에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과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에서 엄선한 유물 약 300점을 볼 수 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세운 불치 신전과 루니 신전의 페디먼트(서양 건축 정면 상부에 있는 삼각형 벽)가 이탈리아 밖으로 외출한 건 오랜만이라고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에트루리아 전#그리스 문명#로마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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