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제민루는 조선 最古 지방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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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교수 논문… 1591년 의국 재건, 공립이지만 향촌 사족이 운영 주도

경북 영주 제민루. 지금의 모습은 1965년 이전을 거쳐 2007년 개축된 것이다. 김호 경인교대 교수 제공
경북 영주 제민루. 지금의 모습은 1965년 이전을 거쳐 2007년 개축된 것이다. 김호 경인교대 교수 제공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지방 의원은 경북 영주의 ‘제민루(濟民樓)’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호 경인교대 교수는 학술지 ‘국학연구’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 ‘16∼17세기 조선의 지방 의국 운영’에서 “조선 최고(最古)의 지방 의국(醫局)은 사족(士族)들이 주도해 운영한 제민루”라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제민루는 1433년(세종15년) 영주군수가 학교와 의국을 겸하는 건물로 세웠다. 오랫동안 의국보다는 서당과 학자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사용하다가 1591년 군수 이대진이 북쪽에 큰 건물을 재건해 의국으로 삼으면서 기능을 회복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제민루는 내의원에 납입할 약재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세워졌지만 지방민을 위한 의료 혜택과 환난상휼(患難相恤·재앙을 당하면 서로 도와줌)의 플랫폼으로 활용됐다”고 밝혔다.

제민루에서 만든 환약과 탕약은 영주를 비롯한 경북 사람들이 두루 복용했다. 의술에 밝았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아들에게 제민루에서 제조한 환약을 꾸준히 복용하라고 권했다는 기록도 있다.

운영 재원도 상당한 규모였다. 1596년 기준 제민루에 속한 전답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비교해도 적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재원은 국가가 마련한 제민루 둔전(屯田)에서 충당하는 한편 사족들이 일부를 기부해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민루는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6세기 말∼17세기 중엽 사족들이 책임 있게 운영하면서 새로 의서를 구비하거나 여러 물건을 보충했고, 문서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17세기 제민루는 13, 14종의 의서 100여 권을 소장했다. 당시 소수서원 소장 도서가 500여 권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양이다. 제민루는 향촌 사회가 자율적으로 운영했으므로 사족들의 참여는 필수적이었고 양반과 상민, 천민, 승려를 비롯해 100여 명이 운영에 관여했다.

17세기 말∼18세기 초에는 의국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1748년 영주의 사족들이 제민루를 중건했다. 김 교수는 “역사상 사회적 자본은 저절로 확충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제민루에서 제민(濟民·백성을 구제함)을 국가의 임무로 한정하지 않은 향촌 사족들의 의지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제민루#조선 의원#류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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