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괴짜 소설가가 바라본 요란하고 희한한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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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김명남 엮고 옮김/472쪽·1만6800원·바다출판사

저자(1962∼2008)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소설가다. 장편소설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는 ‘타임’이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로 선정했지만 1000쪽이 넘는 데다 각주가 300개가 넘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남긴 장편소설은 ‘시스템의 빗자루’, ‘창백한 왕’을 포함해 모두 3권이다.

이 책은 저자의 산문집 3권에서 9개의 글을 골라 엮었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이지만 신선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일상과 사회를 관찰한 괴짜 소설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표제작인 ‘재밌다고들…’은 잡지사의 의뢰로 호화 크루즈를 타고 카리브해 여행을 한 소감을 담았다. 선 베드를 잠깐만 비워도 처음 상태로 정리하는 놀랍도록 신속한 서비스, 넘치는 음식, 끝없이 이어지는 즐길 거리를 향한 그의 시선은 요란하고 희한한 쇼를 보는 듯하다. 카리브 해를 보며 ‘파란’, ‘새파란’이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파란 빛깔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긴 한다. 하지만 저자가 손수 가방을 날랐다는 이유만으로 담당 직원이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간신히 사태를 수습한 뒤 자본주의의 그늘에 씁쓸해한다. 상어에 집요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그가 실제 상어가 몰려드는지 확인하고 싶어 피가 흐르는 음식물 쓰레기를 달라고 했다 거절당하는 모습은 아이 같다.

9·11테러 현장을 TV로 시청하다 느끼는 공포 중 일부는 미국 내의 암울한 현실임을 깨닫는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은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미국 영어 어법,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 등 방대한 주제를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은 독특한 방식으로 음식을 해내는 요리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각주는 때로 두 페이지 이상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지만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저자의 소설이 문득 궁금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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