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만 읽기에도 24시간이 모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1일 03시 00분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조 퀴넌 지음·이세진 옮김/384쪽·1만4800원/위즈덤 하우스

소설을 편애하며 종이책만 보는 ‘열렬한 독서가’ 저자의 탐독기
책의 본질-가치 등 위트있게 피력

“어떤 것들은 존재 그대로 완벽하기에 아무런 개선도 필요하지 않다. 하늘, 태평양, 자식을 본다는 것,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딱 그렇고 책이 딱 그렇다.”

‘존재 자체로 완벽한 것들’의 목록에 책을 끼워 넣은 이 남자의 독서력을 보자. 1년에 최소 100권 이상을 읽는다. 소장도서는 1400여 권. 애독가치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평균적 미국인으로서는 300년 동안 읽을 책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양이다. 어림잡아 지금까지 6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지만 24시간 책만 읽고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렇듯 ‘열렬한 독서가’이자 미국 출판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위트 넘치는 탐독기다. 책뿐 아니라 서가, 서점, 도서관, 출판 등 종이 냄새 물씬나는 아날로그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경험과 소회가 촘촘히 이어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정리하거나 소장하는 방식, 활용하거나 처분하는 규칙을 나름대로 갖고 있다. 저자도 예외가 아닌데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일단 그는 시사, 전기, 회고록, 자기계발서, 기업가나 정치인이 쓴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주로 픽션을 편애한다. 책만이 가진 물성을 고귀하고 신비롭게 여겨서 종이책을 좋아한다. 책장 정리를 주제별로 하지 않고 책의 판형, 질감에 따라 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특히 킨들 같은 전자책에는 뿌리 깊은 불신과 회의감을 피력하고 오디오북은 책으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초판본이나 육필본을 모으는 책 수집가들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고서점엔 전혀 취미가 없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하도 헌 옷에 헌 장난감만 갖고 놀아서 헌것이라면 딱 질색이라나. 그래서 새 책을 고집한다.

대학 때 읽기 시작한 ‘율리시스’를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다 읽지 못했다는 사실 등 독서에 대한 솔직하고 발칙한 고백은 웃음을 유발한다. 열다섯 살 때 자신의 방학을 망친 필독서 토머스 하디의 책이 수십 년 뒤 아들의 방학을 똑같이 망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치 교사들이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마라, 애새끼들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분노하는 장면도 웃긴다. 유머러스한 고백 속에 책의 본질이나 가치, 독서 문화의 문제점도 노련하게 피력한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책과 관련된 자신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전자책을 폄하하거나 특정 종류의 책을 비하하는 등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독서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이 모두 같을 순 없다. 이 사적인 탐독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나만의 탐독기’를 써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올해는 25년 만에 정부에서 지정한 ‘책의 해’다. 지난해 한국 성인의 40%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상 최악의 독서율을 기록했다. 독서를 일종의 의무로 생각해서다. 알고 보면 이렇게 즐거운 모험인데 말이다. 이 솔직한 탐독가의 고백처럼 고전, 필독서 따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지루하면 덮어도 된다. 그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책을 즐겁게 읽는 걸로 충분하다. 그러면서 나만의 규칙, 나만의 기벽, 나만의 독서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진짜 내 스타일대로. 원제는 ‘One for the Books’.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조 퀴넌#이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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