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그리스식 비극은 내일…오늘밤만큼은 희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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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맑음. 오늘 밤엔 희극. #272 Theo Bleckmann ‘Comedy Tonight’ (2017년)

재즈 보컬 시오 블렉먼의 2017년 음반 ‘Elegy’ 표지.
재즈 보컬 시오 블렉먼의 2017년 음반 ‘Elegy’ 표지.
임희윤 기자
임희윤 기자
재즈는 집중해서 들으면 전위예술, 흘려서 들으면 배경음악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1889∼1977)의 말을 비틀어봤다.

말 그대로 연말이다. 미분(微分)하면 고통의 순간 몇 개가 추출되는 나의 한 해도 멀리서 바라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내일은 비극, 오늘 밤엔 희극!’

독일 출신 재즈 보컬 시오 블렉먼이 올해 낸 앨범 ‘Elegy’에 실린 곡 ‘Comedy Tonight’를 듣는다. 원곡은 뮤지컬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1962년 브로드웨이 작품 ‘광장으로 가는 길에 생긴 재미난 일’에 수록됐다. 극의 제목은 미국의 옛 극장식 코미디 쇼에서 쓰이던 우스갯소리 도입부, 즉 “극장에 오는 길에 재미난 일이 있었는데 말이죠”에서 따왔다. 원곡은 뮤지컬을 여는 흥겨운 분위기의 노래다. 블렉먼은 이를 지독히도 느리고 관조적인 피아노 분산화음이 이끄는 명상적인 노래로 재해석했다.

‘왕과 왕관 같은 건 등장하지 않죠/연인과 거짓말쟁이, 광대들 등장!’ ‘불길하거나 얌전한 것과는 상관없죠/비극은 내일, 오늘 밤엔 희극!’

심각하고 무거운 그리스식 비극은 나중 일로 미루고 오늘 밤만큼은 온갖 익살스러운 것들을 담은 희극으로 채우리라는 선언문 같은 곡. 조커나 악동이 말썽 부리기 전에 부르는 듯한 원곡 분위기는 마치 하늘하늘 흩어지는 눈송이 같은 음표에 올라탄 듯한 블렉먼의 가창을 타고 시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기까지 한 느낌으로 변해 버렸다.

블렉먼의 앨범 제목 ‘Elegy’는 비가, 즉 슬픈 노래를 뜻한다. 뮤지컬이 ‘Comedy Tonight’를 도입곡으로 썼듯 블렉먼은 이 곡을 짧은 연주곡 뒤에 본격적으로 앨범을 여는 서곡처럼 이용한다. 곡이 선언하는 바와는 반대로 슬프고 느린 노래가 아주 많이 이어질 뿐이다.

1년이란 과거의 틈에 켜켜이 밴 슬픔일랑 블렉먼이 흘리는 음표의 강물 위로 띄워 보낸다. 지나간 삶을 가까이서 보는 일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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