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 때문에”… 출판인쇄업체 줄도산

손택균기자 입력 2017-12-27 03:00수정 2017-12-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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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악화 시달리는 중대형 인쇄업체 수십 년 동안 종이책을 찍어내 온 중대형 인쇄업체들이 올해 잇달아 부도를 내거나 경영 악화로 자진 폐업했다. 경영 환경의 개선 가능성이 크지 않아 자칫 출판업계의 물리적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문을 닫은 인쇄업체는 백산인쇄, 신흥피앤피, 중앙인쇄, 삼성인쇄 등이다. 이 중 신흥피앤피는 1975년 7월 설립된 경기 파주출판단지 내 규모 2위 업체였다. 지난해 매출은 115억4600만 원으로 최근 3년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신흥보다 작은 다른 업체들도 같은 기간 매출은 30억∼40억 원대였다.

부도 또는 폐업을 맞은 사유는 모두 어음이다. 수십억 원의 부채를 끌어안은 채 사업을 계속하기에는 업계 전반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결제가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않고 차례차례 문을 닫은 것이다.

이는 “일찌감치 예견됐던 사태”라는 게 출판 관계자들의 견해다. 책 인쇄 대금을 현금으로 곧바로 지불하지 않고 어음으로 주고받는 오랜 관행이 인쇄산업의 안정성을 저하시켰다는 것.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물가 변동과 상관없이 25년이 넘도록 인쇄 대금은 한 번도 인상된 적이 없다”며 “시장에 닥치는 작은 충격에도 견뎌낼 여력이 없는 업체가 태반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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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이 복잡한 입체형 어린이책 인쇄 계약 등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넘어가는 추세인 가운데 노후 설비 교체로 인한 비용 부담, 대출이자와 용지가격 인상 등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는 설명이다.

1월 부도를 내고 최근 인터파크에 인수된 서적도매업체 송인서적이 좌초한 사연과 같다. 인쇄업체는 출판 계약을 맺은 즉시 종이를 현금으로 사들여 인쇄 작업에 착수하지만 대금 대신 받은 약속어음을 현금으로 쥘 수 있는 시점은 대개 그로부터 7∼9개월이 지난 뒤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중소 인쇄업자들이 수주를 위해 단가 낮추기 경쟁을 벌이면서 인쇄업계 사정이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출판산업 어음 거래의 진원지인 대형서점과 메이저 유통업체의 오랜 결제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머잖아 ‘돈이 있어도 책을 찍어낼 수 없는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 대표는 “‘좋은 책을 만들어 왔다’고 자랑하면서 인쇄 대금 지불은 당연한 듯 한없이 미루는 중견 출판사 대표를 만나면 기분이 묘해진다. 출판 관련 단체나 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중대형 인쇄업체#출판인쇄업체 도산#출판산업 어음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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