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1년… 공연계 표정은

  • 동아일보

클래식 ‘허걱∼’… 뮤지컬 ‘휴∼’

《 “공연계 10여 년 동안 올해만큼 힘든 적은 없었어요.” 한 클래식 기획사 대표가 최근 공연계 모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청탁금지법이 28일 시행 1주년을 맞는 가운데 기업들의 협찬과 후원에 크게 의존해왔던 공연계는 잔뜩 움츠린 상황이다. 내년부터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다음 달 12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빈체로 제공
다음 달 12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빈체로 제공
○ 20∼40% 수익 감소에 깜깜한 미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대형 클래식 공연이다. 시장 자체가 작아 기업 후원 없이는 1회에 5억∼10억 원의 제작비가 드는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2500석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든 객석을 20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팔아야 5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빈체로, 크레디아, 마스트미디어 등 대형 클래식 공연 기획사들은 대기업과 후원 계약을 맺고 제작비 일부를 메워왔다. 보통 전체 티켓의 30∼40%를 기업 후원사에 제공했다. 기업들은 이런 티켓을 고객 초청행사 등 마케팅에 활용했다. 하지만 초대권 제공이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기업들은 후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줄인 상황이다.

올해 3∼5월 한국메세나협회가 4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활동 관련 지출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다’는 응답이 23.8%에 달했다.

한 기획사 대표는 “공연을 1, 2년 전부터 준비하면서 후원받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올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라며 “하지만 내년 공연의 경우 기업 후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기획사 대표도 “지난해보다 수익이 20∼40% 줄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라고 했다.

올 8월 삼성카드가 ‘1+1 티켓’ 행사를 진행해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벤허’. 쇼온미디어 제공
올 8월 삼성카드가 ‘1+1 티켓’ 행사를 진행해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벤허’. 쇼온미디어 제공
반면 뮤지컬, 연극 공연은 상대적으로 기업 후원이 적어 예상보다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뮤지컬 연극 등 공연 티켓을 단체로 구매하는 기업의 큰손은 카드 회사였다. 이들은 연말에 실적이 높은 고객들에게 감사 선물 차원에서 공연 티켓을 구입해 무료로 제공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이 방식이 법에 저촉될 소지가 커지자 카드사들은 자사 카드 결제 시 ‘1+1 티켓 판매’를 내세워 5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줬다. 뮤지컬 ‘벤허’를 제작한 NCC는 “제작사 입장에선 과거 기업이 티켓을 단체 구매하던 것과 효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뮤지컬 ‘아이다’ ‘맘마미아’ 등을 제작한 신시컴퍼니 측도 “기업들이 자사 직원들에게 주려고 단체로 구매하는 티켓은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아 뮤지컬 시장이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 스타 마케팅과 지방 공연 활성화 필요

언제까지나 기업 후원에 매달릴 수만은 없는 공연계는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을 줄이고 실력은 좋지만 국내에 덜 알려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게 대표적이다.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국내 스타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팬들이 좀더 찾을 수 있는 공연을 많이 기획하고 지방 공연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공연계에 대한 청탁금지법 적용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뮤지컬 제작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선물 상한액인 5만 원 이하로 티켓 가격을 책정하기는 무리”라며 “문화 향유 차원에서 유동성 있는 상한액 조정이 뒤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욱 creating@donga.com·김정은 기자
#김영란 청탁금지법#공연계 협찬#공연계 후원#클래식 공연#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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