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올가을 ‘향기 나는 대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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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낭만과 분위기를 돋우기에는 향수만한 게 없어 보인다. 꽃과 풀, 나무, 과일, 가죽에서 나는 향 등을 창의적으로 배합해 완전히 새로운 향을 탄생시킨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가을의 낭만과 분위기를 돋우기에는 향수만한 게 없어 보인다. 꽃과 풀, 나무, 과일, 가죽에서 나는 향 등을 창의적으로 배합해 완전히 새로운 향을 탄생시킨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가리비 모양의 마들렌 과자를 베어 물면서 그 향을 맡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때부터 시공간을 격동적으로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에게 향은 특별한 장소의 기억을 송두리째 소환해 줄 뿐 아니라 생의 의미를 일깨우는 강렬한 쾌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냄새(향)가 기억을 되살려주는 매개체가 된다는, 일명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다.

이처럼 향의 힘은 막강하다.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건 시각이지만, 더 깊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후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패션의 완성은 구두가 아니라 향수’란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동아일보 스타일 매거진 Q는 올가을 유난히 뜨거운 ‘향수 대전(大戰)’을 주제로 최근 새롭게 출시된 향수 제품과 가을철 트렌드, 초심자를 위한 향수 사용법까지 두루 짚어본다.

▼여성의 아우라 품은 ‘가브리엘 샤넬’, 런던의 아침햇살 담은 ‘마이 버버리’…▼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엔
우디와 머스크 향이 가장 잘 어울려
최근 향수 겹쳐 뿌리는 ‘레이어링’ 인기
초보자는 같은 계열의 향 섞는 게 안전

향수는 조합된 향료들의 휘발되는 속도가 각각 달라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다른 향으로 변해간다. 어떤 향수는 체취와 어우러지면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바뀌기도 한다. 향수를 고를 때도 첫 향부터 잔향까지 모두 느껴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


조향사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그리면서, 때로는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기본 재료들을 창의적으로 배합해 향을 만들어 낸다. 향수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최근 한국 시장에 새로 출시된 ‘낯선 향’을 중심으로 그 안에 담긴 매력과 상징에 대해 알아봤다.

샤넬 ‘가브리엘 샤넬’
샤넬 ‘가브리엘 샤넬’
이번 가을 향수 대전의 가장 큰 화제작은 15년 만에 신제품을 내놓은 샤넬의 ‘가브리엘 샤넬’이다. 샤넬은 2002년 ‘샹스(Chance)’를 출시한 뒤 ‘샹스 오 땅드르(Chance Eau Tendre)’와 ‘샤넬 넘버5 로(Chanel No.5 L‘Eau)’ 등의 시리즈 향수를 내놓았지만 진정한 신제품 향수는 오래도록 출시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신제품 향수 출시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구체적인 성격이나 특징은 공개하지 않아 향수 애호가들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키웠다.

가브리엘 샤넬은 샤넬 넘버5보다는 젊은층 소비자들을 겨냥한 제품으로 여성스러우면서도 진취적인 이미지를 가진 헐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모델로 앞세웠다. 가브리엘 샤넬의 삶처럼, 확립된 기준을 깨고 나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상을 상징하는 향이다.

샤넬 향수를 대표해온 꽃향을 바탕으로 화이트 머스크와 오렌지, 블랙커런트 향 등으로 상쾌함을 더했다. 가브리엘 샤넬의 조향사 올리비에 폴주는 “이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향을 탄생시켰고, 태양의 빛을 머금은 여성의 아우라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향수 병은 특별한 유리공법으로 제작돼 그 자체가 하나의 보석 같은 느낌을 준다.

버버리 ‘마이 버버리 블러시’
버버리 ‘마이 버버리 블러시’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버버리의 향수 시리즈인 마이 버버리의 신제품 ‘마이 버버리 블러시(My Burberry Blush)’의 향도 매혹적이다. 싱그러운 아침의 첫 햇살이 스며드는 런던의 정원, 그 속에서 피어나는 꽃에서 영감을 받은 향이다.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조향사 프랑시스 쿠르지앙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향수를 뿌린 직후(톱 노트)에는 달콤한 석류와 상쾌한 레몬 향이 다가오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미들 노트) 섬세한 장미 꽃잎과 산뜻한 사과 향이 난다. 가장 오래 지속되고 안정감 있는 향(베이스 노트)은 재스민과 등나무 꽃 어코드다. 핑크색을 띤 향수병에는 손으로 직접 묶은 리본이 있는데 예사롭게 넘기면 아쉽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원단인 개버딘(gabardine·질기고 튼튼한 능직 원단) 소재로 돼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아쿠아 디 콜로니아-무스치오 오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아쿠아 디 콜로니아-무스치오 오로’
최근 국내 향수시장에서 신세계의 행보가 주목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SI)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바이레도’에 이어 최근 프랑스의 최고급 향수 브랜드 ‘딥티크(Diptyque)’의 국내 판권까지 인수하며 프리미엄 향수 사업을 강화했다. 딥티크는 1961년 탄생한 대표적인 니치 향수 브랜드다. 제품마다 고유의 탄생 스토리가 일러스트로 표현돼 예술적 가치와 접목하는 것이 특징이다.

딥티크 ‘베티베리오 오 드 퍼퓸’
딥티크 ‘베티베리오 오 드 퍼퓸’
딥티크는 올가을을 맞아 관능적이면서 우디한 향의 ‘베티베리오 오 드 퍼퓸’을 새로 출시했다. 고농축된 베티베르(vetiver)풀 우디(나무) 향과 자몽 에센스의 쌉싸름한 향이 특징인 ‘베티베리오 오 드 투알렛’을 7년 만에 재해석한 작품이다. 남녀 구분 없이 향을 즐기는 폭이 넓어지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해 남녀 공용으로 출시된 것도 특징이다. 우디 향와 머스크(사향)가 아우러져 뿜어내는 향은 가을의 쌀쌀한 날씨와 잘 어울려 이맘때 가장 인기가 있다.

바이레도 ‘벨벳 헤이즈 오드퍼퓸’
바이레도 ‘벨벳 헤이즈 오드퍼퓸’
바이레도는 가을에 어울리는 향수 ‘벨벳 헤이즈(Velvet Haze) 오드 퍼퓸’을 내놓았다. 아름답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최면에 빠진 효과를 주는 것 같은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몽환적이고 풍부한 향은 코코넛 워터의 달콤함으로 시작해 파출리 잎사귀의 열정적인 향, 벨벳 카카오와 야생 머스크 향이 어우러지면서 풍부한 향기를 경험하게 해 준다.

향수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가장 어울리는 향으로 우디와 머스크 향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여성 고객들은 과일향과 꽃향을 주로 좋아해왔지만 점점 우디나 레더(가죽) 향처럼 중성적인 느낌을 원하는 이들이 늘었다. 여기에 달콤한 코코넛이나 상큼한 자몽, 여성스러운 장미향이 조합되면 무겁지 않으면서도 여성스러운 향이 완성된다고 한다.

바이레도 파우더 향수 ‘가부키 퍼퓸 컬렉션’
바이레도 파우더 향수 ‘가부키 퍼퓸 컬렉션’
최근에는 옷을 겹쳐 입듯이 향수도 겹쳐 뿌리면서 나만의 향을 만드는 ‘레이어링’이 인기다. 하지만 자칫 안 뿌리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이지나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 브랜드 담당은 “초보자는 같은 계열의 향을 섞는 것이 안전하고, 휘발성이 높은 가벼운 플로럴이나 시트러스 계열부터 시작하는 것이 실패 확률이 낮다”고 조언했다. 올가을 트렌드인 머스크 계열의 베이스에 화사한 느낌의 장미향을 뿌려주면 섹시하면서도 가을에 맞는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추천이다. 초심자가 잔잔하게 향을 오래 지속하고 싶으면 뒤통수 아래 모근 부분에 뿌려주거나 남자는 넥타이 뒤에 한 번 뿌려주면 은은한 잔향을 느낄 수 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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