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선 마지막 법전이 인터넷 매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6일 03시 00분


고종2년 편찬된 ‘대전회통’ 5권
작년 예술품 경매사이트에 올라와

서울대 “1970년대 도난” 반환 소송
경매의뢰인 “대학이 버린 것 구매”
분실古書 소유권 분쟁 가늠자 될듯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학교 도서관 책이 올라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20일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한 졸업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 예술품 경매사이트인 K사 홈페이지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도서관’ 직인이 찍힌 대전회통(大典會通·사진) 5권이 매물로 올라왔다는 내용이었다. 대전회통은 고종 2년(1865년)에 편찬된 조선시대 최후의 통일법전이다. 이 사실을 전달받은 서울대 법학도서관이 즉시 서가를 뒤져 보니 1970년 작성된 도서원부(책 입고 현황을 기록한 장부)만 남아있고 책은 온데간데없었다. 서울대 측은 즉시 K사에 경매 중단을 요청하고 동시에 관할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했다.

○ 47년 만에 모습 드러낸 대전회통

서울대 측은 대전회통을 1970년대에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대 규정상 자료를 이관·폐기 등을 할 경우 원부에 기록하도록 돼 있지만 1970년 이후에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매 중단 요청 직후 K사를 찾은 서울대 교직원들은 분실된 책 5권의 첫 장마다 서울대 법과대학의 전신인 ‘법관양성소’ 직인이 찍혀 있는 점을 확인했다. 그중 세 권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도서관’ 직인 및 도서원부에 기록된 번호와 일치하는 등록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에 K사는 “대전회통을 경매 의뢰인과 상의해 직접 반환하도록 하거나, 반환이 힘들 경우 직접 구입해 서울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경매 의뢰인 이모 씨(74)가 K사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대전회통의 반환은 무산됐다. 이 씨는 “1975년 서울대가 종로구 동숭동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버리고 간 것을 구매한 것”이라며 정당하게 소유권을 얻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씨의 주장을 뒤집을 뾰족한 증거가 없는 데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경찰 수사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대전회통을 돈을 주고 사오면 이 씨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꼴이 돼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서울대 측에는 부담이 됐다. 결국 서울대는 올해 초 K사를 상대로 대전회통 인도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민사84단독 이일염 부장판사에게 배당됐다.

○ “인사동 곳곳에 서울대 도서관 책 유통”

이번 사건은 국립대학교와 사인(私人)이 고서의 소유권을 두고 벌이는 첫 소송이다. 이번 소송의 결과는 앞으로 유사 소송에서 방향키가 될 수 있다. 서울대는 대전회통 사건을 계기로 최근 중앙도서관이 보유한 고서 중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되지 않은 20여만 권에 대한 전수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원래 있어야 할 책 가운데 약 44.2%인 8만8700여 권이 분실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고서점이 밀집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는 현재 서울대 직인이 찍힌 고서 400∼500권이 유통 중이라고 한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다른 대학이 분실한 고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고서 가운데 상당수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 등지로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대학 당국이 고서 관리를 체계화하고 DB 구축에도 적극 투자해야 한다”며 “소송 외에도 밀반출된 도서를 유인할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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