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 늙은이들 주책 떠는 게 얼마나 재밌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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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부부로 만난 배우 이순재-정영숙

연극 ‘사랑해요, 당신’ 대본을 든 이순재 씨(왼쪽)가 정영숙 씨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이들은 “난 정말 니들 사랑했다. 다만 방법이 좀 달랐고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지”라며 극 중 한상우가 자녀들에게 한 대사가 찡하게 와 닿는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연극 ‘사랑해요, 당신’ 대본을 든 이순재 씨(왼쪽)가 정영숙 씨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이들은 “난 정말 니들 사랑했다. 다만 방법이 좀 달랐고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지”라며 극 중 한상우가 자녀들에게 한 대사가 찡하게 와 닿는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선배님이 씻겨주고 밥도 떠먹여주세요. 저는 해주시는 대로 다 받고요.”

배우 정영숙 씨(70)가 옆자리에 앉은 이순재 씨(82)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아내가 치매에 걸린 70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부부 역을 맡은 이들 사이에는 편안한 공기가 흘렀다. 이 씨는 “평소에 잘 못해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직접 돌보는 거지”라고 답했다. 이 씨가 원장을 맡아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SG연기아카데미에서 지난달 31일 이들을 만났다.

4일 막을 올리는 이 연극에서 이 씨는 무뚝뚝한 전직 교사 한상우 역을 맡았다. 정 씨는 모든 걸 참고 살아오다 치매로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아내 주윤애를 연기한다. 그때껏 윤애가 남편에게 유일하게 바란 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무심한 남편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치매를 앓으니 아내는 뭘 원하는지도 모르게 됐고,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더 미안해진다. 장용(72), 오미연 씨(64)도 부부로 나와 이들과 번갈아가며 출연한다. 가천대 길병원이 제작 지원을 하고 의료 자문도 했다.

이 씨는 아내에게 잔소리하고 자녀들을 엄하게 대한 한상우가 가슴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교육자니까 자녀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야단치며 키울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잔소리를 해도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요.”(이 씨)

실제 이 씨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일절 잔소리를 하지 않는단다. 정 씨가 “애정 표현은 하시죠?”라고 물었다.

“안 해.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꽃보다 할배’에서도 나랑 신구는 집에 전화 안 하잖아. 박근형도 아내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다정하게 바뀐 거지 옛날에는 안 그랬어.”(이 씨)

정 씨는 치매 환자를 실감나게 연기하려 애쓰고 있다.

“치매 환자들을 관찰하고 상상도 해 봤어요. 초점이 나간 눈빛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요.”(정 씨)

노인이 나온다고 해서 연극이 고리타분할 것이라 여기면 오산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늙은이들이 주책 떠는 게 더 재미있어. 웃기는 장면이 많아요.”(이 씨)

“아휴, 연습할 때마다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정 씨)

이 씨는 미국 대통령 이름을 재임 순서대로 모두 외우는 등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이 씨는 정 씨가 출연한 드라마와 역할, 연도는 물론 상대 배우 이름까지 줄줄 읊었다. 정 씨는 “어머, 맞아요!”라며 연신 감탄했다. 정 씨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기억력을 유지한다고 했다.

올해 연기 인생 61주년을 맞은 이 씨는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겠단다.

“한 작품 한 작품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어. 연극은 관객과 호흡하고 교감할 수 있어서 특히 매력적이지.”(이 씨)

정 씨는 배우이기에 억척스러운 여인, 주책 맞은 고모 등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어서 참 좋단다. 이 씨는 아내와 여유 있게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 했다.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아내와 길게 여행 간 건 태국 푸껫을 일주일 다녀온 게 전부예요. 자연도 좋고 문화적으로도 볼 게 많은 유럽을 열흘 정도 같이 가 보고 싶어.”(이 씨)

정 씨가 “남편과 다녀 보니 별로 편치 않던데요”라고 말하자 이 씨가 “그런가?”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4일∼5월 28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6만 원. 1566-5588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순재#정영숙#사랑해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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