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31일 슈베르트 220회 생일… 그는 과연 불행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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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예술가들은 그 삶이 불운할수록 사랑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기 작가들도 예술가의 여러 측면 중에서 유독 동정받을 만한 면을 강조합니다.

 모차르트는 삶의 대부분을 호사스럽게 살았는데도 만년에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써 보낸 편지들이 유독 자주 인용되고, 말러는 빈 국립오페라 감독이라는 당대 음악계 최고의 지위를 누렸는데도 유난히 그의 교향곡이 당대 청중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의 삶도 ‘불행’의 아이콘을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음악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만년에 쓴 야심적인 교향곡들(8번 ‘미완성’, 9번 ‘더 그레이트)도 그가 죽고 한참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하죠. 소극적인 자세와 못생긴 외모 때문에 생전에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사실일까요?

 1827년, 세계 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슈베르트는 그의 관을 운구했습니다. 옆에서 횃불만 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베토벤의 마지막 길에 ‘주요 음악가’로 대접받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곳곳에서 초청받는 ‘명사’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작은 애호가 그룹 ‘슈베르티아데’에서만 한정적으로 발표되었다고 한탄하는 문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음악가는 그런 애호가 그룹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송어’ 오중주도 그의 가곡 ‘송어’를 들은 음악가들이 “우리 동네를 찾아주시고 ‘송어’를 실내악곡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제안한 덕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 그가 왜 ‘불행’의 표상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모든 모순은 오직 한 가지, 만 31세에 닥친 때 이른 죽음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초년’으로 불릴 나이가 그에게는 ‘만년’이었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교향곡 8번, 9번도 생전에 초연을 보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완숙한 교향곡을 썼을 것입니다.

 결혼도 했겠죠. 사실 여러 초상화로 보는 그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오늘, 1월 마지막 날은 슈베르트의 220회 생일입니다. 어쨌든 그는 요절이라는 확실한 불운으로 삶을 마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를 위해 오늘 밤 작은 촛불을 켜두고 싶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슈베르트#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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