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연하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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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가끔은 정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후배가 지난봄에 첫아기를 출산했다고 해서 축하 카드와 아기 옷을 사 놓고는 며칠 전에야 소포로 보냈다. 너무 늦은 인사가 돼버린 것은 물론이고 아기 옷 역시 지금은 맞지 않을 게 뻔하다. 그 축하 카드를 찾느라 각종 서류와 책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는 책상을 뒤적거리는데 두툼한 비닐봉지 하나가 툭 떨어졌다. 지난해 이맘때쯤 사둔 연하장들이 그대로 들어 있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연도가 새겨진 연하장은 서랍에 넣어두고, 올해 연하장을 보내고 싶은 이름들을 깨끗한 종이에 적어보았다. 책을 내면 늘 그랬듯 지난여름에도 K 선생께 보내드렸다. 작고하신 지 2년이 되었으므로 이번에는 사모님 성함으로. 그 후 사모님께서 건필하라는 편지와 K 선생의 유고 비평집을 보내주신 적이 있다. 늦은 답장을 연하장으로 대신해도 될까. 가을에 회갑 기념 산문집과 엽서를 보내주신 선생님, 이 코너를 읽으시고는 지식과 정보를 쌓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인문학, 자연과학 책을 우편으로 보내주신 분, 그리고 일 때문에 올해 처음 만났지만 친구로 지내고 싶어진 이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올해는 지난해보다 연하장을 몇 장 더 사야 할 것 같다.

  ‘연하(年賀): 새해를 축하함.’

 우체국에서는 매년 ‘연하 카드’라는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내년이 정유년이어서 이달에는 금박의 닭 그림들을 주로 인쇄해 놓은 모양이다. 이 연하 카드, 연하 우편 제도가 우리나라에 생긴 것은 20세기 초 근대 우편 시스템이 확립된 후라고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체국의 다양한 연하 카드도 그동안 받기만 해왔던 것 같다. 어느 외출길에 후다닥 사둔 연하장들도 생각이 나면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서랍 속에 쌓아두기나 하고. 그래도 연하장 보낼 명단을 적고 보니 고마웠다는 인사를 보낼 데가, 새해 축하 인사를 하고 싶은 곳이 생각보다 많다. 몇 해 전인가, 대형 서점의 카드 코너에서 단 한 장의 연하장도 사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그 앞을 서성거렸어도 부칠 데가 한 군데도 떠오르지 않아서.

 이진명 시인의 ‘카드 한 장’이라는 시를 찾아 읽는다. ‘나도 카드 한 장 정성스레 부칠 데는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새해 인사 하고픈 사람 있을 것이다. 단 한 장의 카드 살 때 이미 마음속에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다리 아픈 고생 끝에 아름다운 카드 하나 골라 쥐었을 때 번지던 기쁨. 올 12월에는 거기로 새해 카드를 보내자.’

 아무리 게을러도 올해는 먼저 보내는 기쁨을 느껴보고 싶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거나, 건강과 행복이 깃들길 바란다는 상투적인 글귀가 가장 빛나는 때가 지금이 아닌가.

 연하. 미리, 모두에게 새해를 축하함!
  
조경란소설가
#연하장#정유년#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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