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음악의 꽃’ 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바이올린 차세대 주자 권혁주 31세로 돌연사

“오늘 제 연주, 어떠셨어요?” 권혁주는 공연이 끝나면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지인들에게 꼭 평가를 부탁했다. 그만큼 무대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늘 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전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오늘 제 연주, 어떠셨어요?” 권혁주는 공연이 끝나면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지인들에게 꼭 평가를 부탁했다. 그만큼 무대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늘 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전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내일 함께 리허설을 하기로 했는데….”

 전화기 너머로 한국 바이올린계의 대모로 불리는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65)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는 16일 대한민국국제음악제 폐막공연인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자신의 제자 3명과 함께하기로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31)가 그중 한 명이었다.

  ‘바이올린 신동’에서 차세대 대표주자로 손꼽히던 그가 1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권혁주는 이날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움챔버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 공연을 위해 전날 새벽 서울에서 부산으로 왔다. 리허설을 끝낸 뒤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한 뒤 택시 운전사는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급성심정지로 추정되는 가운데 경찰은 사인 파악을 위해 부검을 할 예정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알려지자 선후배 음악가들은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혁주를 이렇게 떠나보내니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음악을 지독히도 사랑한 청년이었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글을 남겼다. 그와 함께 자주 무대에 올랐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항상 좋아했던 형이자 동료였어요. 형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보고 싶을 거예요’, 성악가 임선혜도 “드물고 짧았지만 함께한 연주들 모두 고마워요! 앞으로 혁주 씨 생각 없이 이 노래를 하긴 힘들 것 같네요”라는 글을 남겼다.

 누리꾼들의 애도 댓글도 이어졌다. ‘사망 뉴스가 오보였으면 좋겠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후원해온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박선희 팀장은 “혁주 씨는 그 어떤 연주자보다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연주했다”며 “남들이 평생 연주할 것을 짧은 시간에 연주하고 가버렸다”고 탄식했다.

 3세 때 바이올린을 잡은 그는 아이큐가 184일 정도로 머리도 좋고 음악 재능도 타고난 ‘열정의 연주자였다. 외동아들인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각종 상금과 장학금을 받으며 바이올린을 배웠다. 7세 때 한예종 예비학교에 입학해 김남윤 교수를 사사한 뒤 9세 때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11세에 차이콥스키 청소년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고, 1998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제1회 금호영재로 선정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파가니니 국제바이올린콩쿠르와 카를 닐센 바이올린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그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과 함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국의 클래식 열기를 지핀 대표적인 연주자였다. 이들의 영향으로 피아니스트 조성진 문지영,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신을 불러주면 지방 소도시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혁주 씨 정도면 무대를 가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한 명에게라도 더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바쁜 일정과 많은 공연 탓에 9월 오른 팔꿈치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받기도 했다.

 최근 도전한 테마는 베토벤이었다. 내년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와 함께 결성한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을 통해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었다. “공연 레퍼토리를 짜면서 가장 신이 나서 눈을 반짝였던 연주자가 권혁주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10일 자신의 SNS에 ‘당신이 죽는다면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라는 글을 올려 그의 SNS를 찾은 사람들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빈소는 서울 보라매병원, 발인은 15일.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바이올린#권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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