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내내 웃음과 진지함 교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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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단패거리 ‘벚꽃동산’]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 공연 연극 ‘벚꽃동산’. 빚 때문에 집을 경매로 넘긴 뒤 울고 있는 라네프스 카야(김소희·오른쪽)를 딸 아냐(서혜주)가 위로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 공연 연극 ‘벚꽃동산’. 빚 때문에 집을 경매로 넘긴 뒤 울고 있는 라네프스 카야(김소희·오른쪽)를 딸 아냐(서혜주)가 위로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10평 남짓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눈빛이 살아 숨쉰다. 캐릭터에 몰입된 배우의 강렬한 감정이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 기념 연극 ‘벚꽃동산’ 이야기다.

연희단거리패의 정수(精髓)를 보는 듯했다. 극단 대표 배우들이 한무대에 섰다. 김소희(라네프스카야 역), 윤정섭(로파힌 역), 박일규와 이승헌(가예프 역), 오동식(페차 역), 홍민수(피르스 역) 등이 총출동한다.

특히 김소희의 감정 연기가 인상적이다. 천의 얼굴로 대체 불가능한 메소드 연기(극중 인물과 동일시하는 연기)를 러닝타임 내내 선보인다. 김소희의 라네프스카야는 러시아 귀족으로서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파산지경에 이른 벚꽃동산의 지주다. 과거의 추억에 갇혀 늘 감상에 젖어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불안해하고, 격정적인 눈물을 눈에 달고 산다. 김소희는 누구보다 깊게 캐릭터에 몰입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 그렁그렁 담긴 닭똥 같은 눈물은 대사의 행간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떨어졌다. 마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처럼, 그의 눈물은 화룡점정 같은 역할을 해냈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 4대 장막극 중 하나다. 연희단거리패가 30주년 기념작으로 ‘벚꽃동산’을 선택하면서 체호프 4대 장막극을 한 번씩 올리게 됐다. 연희단거리패는 2008년 ‘세 자매’, 2014년 ‘갈매기’, 2015년 ‘바냐 아저씨’를 연달아 올려 호평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이윤택 예술감독의 연출력은 ‘벚꽃동산’에서도 빛을 발했다. 러닝타임 내내 무대 위 배우에겐 옹골찬 연기력을, 관객에겐 ‘웃음’과 ‘진지함’을 번갈아 가며 뽑아낸다. 체호프 스스로도 ‘벚꽃동산’의 소제목을 ‘4막의 코미디’라 붙일 정도로 일상의 아이러니를 포인트로 한다. 이윤택 연출은 억지스럽지 않게, 시쳇말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감정을 영리하게 이끌어낸다. 간만에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났다. 5월 15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 3만 원. 02-763-1268 ★★★★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벚꽃동산#연희단패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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