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는 기록한다… 기억의 빈칸을 채우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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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괄호/엘로디 뒤랑 지음/이예원 옮김/228쪽·1만5000원/휴머니스트

뇌전증으로 단기기억상실 증세를 보인 지은이는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가서 신경과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휴머니스트 제공
뇌전증으로 단기기억상실 증세를 보인 지은이는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가서 신경과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휴머니스트 제공
대개, 내일 아침이 당연히 올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스무 살 무렵의 지은이도 마찬가지였다. 목의 염증 때문에 병원을 찾아갔다가 의사의 권유로 신경과 상담을 받지만 뇌전증(간질)이라는 말을 듣고 발끈해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이 병원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뇌전증의 증상 중 하나는 단기기억상실. 휴가지에서 남자친구에게 느닷없이 소리치며 발작을 일으키고는 곧 그 사실도 잊는다. “느닷없이 닥친 병이니 때가 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바람은 어긋난다. 여러 검사 끝에 의사들은 뇌 속 작은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을 권한다.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기 어려웠던 저자는 “내게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그림을 그렸다. 응시하기 괴로운 이미지들이다. 두 형상으로 나뉘어 겹쳐 보이는 행인들, 뻥 뚫린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손으로 더듬는 자아 밖의 자아. 그 ‘기록’을 뼈대로 삼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투병기를 가족들에게 듣고 모아서 만화 형식으로 전개했다. 자기 연민을 절제한 덕분에 다양한 각도로 풍성하게 읽힌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내 인생의 괄호#엘로디 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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