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학문을 탓하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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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사람은 때때로 목이 막히지만
그렇다고 처음 음식을 만든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
食者有時而(열,일) 然不可以追咎始爲飮食者
(식자유시이일 연불가이추구시위음식자)

―이상정의 ‘대산집(大山集)’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상정(李象靖)이 권만(權萬)과 학문에 대해 논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 말이다. ‘실제의 마음은 악한데 겉으로는 유학의 도리를 빙자하여 자신을 꾸미는 것이 학문의 폐단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음식에 비유하여 설명한 말이다. 학문을 빙자하여 자신의 악함을 포장하는 자들이 문제이지 학문 자체가 무슨 폐단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음식을 먹다 보면 어쩌다 체하기도 하고 배탈이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음식을 해로운 것이라 규정하고서 애초 음식을 만든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제도와 규칙이 존재한다. 저마다의 제도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 운용을 살펴보면 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엉뚱한 쪽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무엇을 탓해야 할까? 제도의 문제인가? 악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인가? 악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도를 보완하고 덧붙여 가면서 제도는 점점 복잡해지고, 우리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 때문에 생활은 오히려 더욱 불편할 때가 있다.

이상정은 이 글에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하여 입을 닫고 먹지 않아서도 안 된다.” 목이 막힐 것을 염려하여 아예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이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우선 제도를 잘못 운영했거나 악용한 사람들을 탓해야지,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만 탓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애초의 문제였던 학문을 다시 생각해보자. 학문을 올바르게 실천한다면 누가 학문의 폐단을 논하겠는가. 학문의 목적은 장차 행하기 위함인데, 어찌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기 위한 학문이 있겠는가. 올바르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행동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위선자들의 행동을 학문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정(1711∼1781)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대산(大山)이다. 여러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대부분은 오래지 않아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이상정#대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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