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형 인간’이란?…연희단거리패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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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게 포장된 다른 극과는 180도 다른 느낌이다. 무대와 배우, 의상 등 관객의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더럽거나’ ‘본능에 충실한’ 쎈 놈들 투성이다. 그래서 강렬하고 인상 깊다.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공연의 첫 포문을 연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 이야기다.

재개발이 예정된 어느 동네의 낡은 단칸방.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부 인생으로 밀려난 남자 넷이 모여 산다. 하루 일과 중 잠을 자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이들은 자기들과 같은 처지의 잉여 인간들을 ‘누룽지형 인간’이라 칭한다. 국가에서 국방 정책의 일환으로 인간을 방바닥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무기로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매일 먹고 자는 자기들이야 말로 국가 비밀 국방정책의 산물이라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비록 잉여인간이지만, 이들의 삶은 철저히 정치적이다. 고작 4명이 모여 살지만 이들 나름대로 투표를 해 지도자를 뽑고, 집권당과 야당을 나눠 ‘쌀밥을 어떻게 배분 할 것인지’ ‘옷은 갈아입는 시기는 언제인지’를 정한다. 머리둘레로 지도자를 정하는 선거 과정에선 권력을 갖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다거나, 부정선거가 적발돼 재선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과거 군사정권시대를 비꼬거나 현대사회를 조롱하며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진다.

배우들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저분하고 극 말미에선 자장면 한 그릇을 놓고 서로 먹겠다며 면을 던지고, 소스를 얼굴에 묻혀가며 더러움의 극치를 선보인다. 객석 맨 앞줄에 앉은 관객이라면, 배우들의 자장면 난투극에서 오고가는 검은 면발을 조심해야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날 것’의 장치들이 관객의 마음을 묘하게 사로잡는다. 늘 스테이크만 물리도록 먹다가 노점상에서 감칠맛 나는 떡볶이 한 그릇을 별미로 먹은 느낌이랄까. 중세시대 유럽 번역극, 잘 꾸며진 무대를 자랑하는 작품, 로맨틱 코미디물을 자주 접한 관객에게 신선함 그 자체. 게다가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출연 배우들이 작품의 격을 끌어올린다.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3만 원, 02-763-1268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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