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1>난 매일 프라이팬을 타고 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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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의 각박한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의 행복 이야기 ‘굿바이 서울!’을 매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
청년실업자 100만 명 시대. 난 그곳에 살았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 평도 안 되는 책상 앞에서 12시간 동안 전쟁을 치르는 그곳을, 다들 갈망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디자인회사와 광고회사를 다녔던 나는 자영업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습관처럼 출퇴근을 반복했다.

하지만 답답한 서울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요리를 배웠다. 내가 만든 요리를 남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좋았다. 작은 가게를 차릴 요량으로 장소를 찾다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전주 남부시장에 청년몰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부시장에 식당을 차렸다.

테이블 네 개가 고작인 허름하고 조그마한 가게다. 아홉 명이 앉으면 꽉 찬다. 조리도구는 프라이팬 달랑 하나. 메뉴는 볶음밥과 볶음요리 정도다. 처음엔 단순히 음식을 팔려고 시작한 식당이 지금은 응접실이 됐다. 단골들은 헤어진 사람의 이야기에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나의 모습을 보며 직장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에 부러움을 표하기도 하고, 창업에 대한 꿈을 펼치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 이런 꿈과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보람된 일이다. 우리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단순히 손님이 아니라 친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손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 전주시내 구석구석을 다니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나 나름대로 전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게 된다. 손님 중에는 관광객들도 꽤 있는데 전주 한옥마을을 전주의 전부로 여기는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분들에게 전주의 또 다른 매력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들에게 전주의 숨은 맛집과 오래된 커피집, 낡은 동물원을 소개해준다. 전주의 한 식당 사장님이 ‘관광객들이 내 얘기를 듣고 자신의 가게에 찾아왔다’며 수제 초콜릿을 건네줄 때면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뿌듯한 느낌이 든다.

처음 시작할 때는 손님보다 길고양이가 더 많았던 곳. 4년이 된 지금 이곳은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찾아주는 관광명소가 됐다. 프라이팬이 날아다닐 정도로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게 이름을 ‘날아다니는 프라이팬’으로 지었는데, 뜻을 알아주는 손님 덕분에 이름값을 하고 있다. 손님이 많을 때면 말하지 않아도 단골들이 척척 일을 거들어준다.

꼭 가방끈이 길어 강단에 서서 인생에 대해 강연하지 않아도, 꼭 연매출 수억 원을 올리며 돈으로 부러움을 사는 상황이 아니어도. 그저 웃으며 때론 함께 욕하며 한마음이 되어 간다는 게 내가 몇 가지를 포기한 채 이곳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 확률이 낮더라도, 금전적 이익이 많지 않더라도, 내가 만족하고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이곳에 내려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난 성공한 사람이다. 난 이런 곳에 산다.

※필자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북 전주로 내려가 남부시장에서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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