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난민 되다/미스핏츠 지음/317쪽·1만5000원·코난북스
20대 청년들이 결성한 독립미디어… 타이베이 홍콩 도쿄 서울 돌며
방 한칸 마련 어려운 청춘의 삶 취재
임대주거 안내 메모가 빼곡히 붙은 홍콩의 한 부동산 쇼윈도 모습. 저자들은 “임대료가 해마다 두 배 세 배 ‘어쩔 수 없이 끝없이 오르는 곳’으로 알려진 홍콩 주택시장의 이면에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임대료 폭등을 규제하지 않으려는 정부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난북스 제공
저자로 기재된 미스핏츠(misfits·부적응자들)는 20대 청년 조소담 박진영 정세윤 구현모 씨가 결성한 독립미디어다. 이들은 ‘이 시대 청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사회 현실에 고분고분 적응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타이베이, 홍콩, 도쿄, 서울 젊은이들의 주거환경 실태를 답사한 뒤 개선 가능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우리는 조용하다. ‘문제를 제기해 봤자 뭐하나, 나는 곧 이 말 안 되는 상황을 탈출할 거다’라고, ‘말해봤자 아무도 듣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불만사항을 머릿속에서 정리할 여유도 없이 근근이 생활해야 하는 삶의 무게 때문일 수도 있다. 주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그래서 맥없이 꺾이고 실체 없는 조각으로 부유한다.”
지원금을 모아 해외 세 도시 동년배들의 주거 현실을 찾아가 보고 기록한 결과물이 썩 일관되게 조밀하다 하긴 어렵다. 낯선 공간을 경험하는 설렘, 문제의식을 잊지 않겠다는 강박, 국적 다른 비슷한 처지의 청춘과 나눈 복잡한 감정의 파고가 정돈되지 않은 채 뒤얽힌 문장이 이어진다.
집중력을 회복하는 건 후반부, 서울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부터다. 주인 모를 신발 더미에 신발을 던져놓고 누워 옆방 연인들의 민망한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곳. 미스핏츠는 “서울 청년들의 이런 수면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한 끼를 닮았다”고 썼다.
백미는 6번째 장, 공들여 정리한 ‘해결의 실마리들’이다.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 부분을 잠시라도 읽어 보길 권한다. 공유주거, 사회주택, 주거장학금…. 모범답안은 아닐지언정, 살아갈 공간에 대한 걱정에 짓눌린 오늘날 이 땅 청춘들의 진솔한 바람이 구체적으로 담긴 제안임에는 틀림없다.
본문에 짤막하게 언급한 동아일보 1984년 5월 5일자 9면 기획기사 ‘대학촌은 자취전성시대’를 찾아 읽어봤다. 책 내용대로 32년 전에도 기숙사가 부족했고 고시원 시설은 열악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젊을 때는 다 그런 거다. 고생도 좀 하는 거다”라고 할 수 없다. 비슷해 보이지만 상태는 악화됐다. 끝없는 내리막길은 사람들을 절망에 쉬이 익숙해지는 삶으로 몰아간다.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건 기다림이 아니다. 변하고자 하는 능동적 움직임이다. 한 사람, 하나의 움직임이 전체를 바꿀 수 없기에 사람들은 쉽게 그 노력을 멈춘다. “여기는 틀려먹었으니 포기하고 떠나자”는 자조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책의 저자들은 이 땅에 머물며 열심히 나름의 답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결과물의 밀도와 무관하게 그 시도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