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명성에 기댄 제목의 해외 미술관 소장품 초대전은 종종 의혹의 시선을 받는다. 부당한 의심은 아니다. 알짜배기를 누락한 ‘속 빈 강정’의 함정은 실재한다. 2016년 3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재단 컬렉션전: 피카소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까지’는 드물게 보는 옹골찬 초대전이다. 비엔날레 등 대규모 국제미술행사의 재미 절반은 행사장 밖 유명 갤러리 또는 컬렉션이 때맞춰 여는 기획전에 있다. 주제의 맥락보다는 조금은 과시적인 대표작 노출에 초점이 맞춰진다. 한국과 베네수엘라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그렇게 ‘은근히 힘준’ 비엔날레 장외 컬렉션에 뒤지지 않는다. 베네수엘라가 석유매장량 세계 1위의 산유국임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줄줄이 걸었다. 》
2005년 설립된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재단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미술갤러리, 크루스디에스 디자인 판화 미술관 등 14개 주요 전시주체를 총괄 관리한다. 유명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중점적으로 수집해온 정부 주도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재단 소속 미술관 소장품이 2만 점을 넘는다. 그 가운데 거장 20명의 작품 100점을 추려 서울로 가져왔다. 글라디스 유네스 유네스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 큐레이터는 “현실을 재현하는 체계, 미학적 현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20세기 예술의 다양한 담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입부터 대뜸 피카소다. 23세 때 작업한 에칭 ‘검소한 식사’와 88세 때 그린 유채화 ‘누드와 앉아 있는 남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갓 자리 잡은 청년 피카소의 초조함, 죽음을 맞기 4년 전 노인 피카소의 거침없음을 잇대 놓고 바라보는 감흥이 묘하다. 맞은편에서는 1955년 작 ‘알제의 여인들’ 석판화 4점을 볼 수 있다. 올해 5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세계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7936만5000달러에 낙찰된 같은 제목의 유채화 제작 전에 남긴 습작 드로잉이다.
관객들의 발을 무엇보다 오래 붙잡는 건 중반부의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자화상’(제작연도 미상)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1981년) 등 인체를 비틀어 쪼개 재조합한 기괴한 석판화가 그득하다.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세면대를 붙잡고 있는 인물’(1976년)은 유채화와 석판화를 함께 선보인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데생이 어색함 없이 이어진다.
사랑스러운 질감과 주제의 석판화들 사이에 걸린 마르크 샤갈의 폭신한 유채화 ‘밤의 카니발’(1979년),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으로 친숙한 피터르 몬드리안의 구상화 ‘무제’(제작연도 미상),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유쾌한 석판화 연작 ‘카페-콘서트’(1893년), 베네수엘라 조각가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추상설치작품 ‘붉은 중앙의 테스’(1973년)도 눈길을 끈다. 대충 훑어보고 지나칠 작품이 드물다. ‘Form’ ‘Nature’ ‘Body’ 등 6개 주제어로 구분한 전시공간도 어수선함 없이 제각각 안정적인 완결성을 보여준다.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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