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시각 장애 있지만…분신 ‘베니’와 함께 이룬 버킷리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1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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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선 씨(32)는 두 살 때 열병을 앓고 귀가 아예 들리지 않게 됐다. 그의 어머니는 말을 해보지 못한 딸의 혀가 굳을까 걱정돼 설탕을 입 주변에 발라 빨아 먹는 연습을 하게 했다. 어머니가 목소리를 내면 딸은 고사리손을 어머니 목에 대고 울림을 느꼈다. 그리곤 제 목에 손을 대고 같은 울림으로 소리를 내며 말을 배웠다. 입 모양으로 상대의 말을 읽는 법도 익혔다.

게다가 그는 2년 전부터 시력을 잃고 있다. 현재 그의 눈은 지름 8.8cm 밖에 볼 수 없다. 청각과 시각 장애를 동반하는 어셔증후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큰 귀를 가진 토끼 베니가 그의 분신이 됐다. 그림 에세이 ‘그래도 괜찮은 하루’(위즈덤하우스)엔 베니가 등장해 그의 인생역정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작업실 갖기,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 등 꿈을 이룬 버킷리스트를 이야기한다.

베스트셀러 ‘그래도…’가 ‘기적의 책 캠페인’ 4월 도서에 선정됐다. 캠페인은 1억 원 모금 프로젝트로 ‘책 한 권, 벽돌 한 장, 책으로 이루는 꿈’이라는 모토로 푸르메재단과 교보문고, 동아일보가 펼치고 있다. 매달 선정한 기적의 책 20종을 교보문고 오프라인 14개 점포에서 구매할 때마다 권당 1000원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고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자동으로 기부된다.

지난달 31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그를 만났다. 그림 속 베니와 꼭 닮았다. 기자가 노트북에 질문을 적어 보이면 그가 소리내 답했다. 그는 “집에 불이 났을 때 물 한 동이만 날라주어도 정말 고마운 일이죠. 책 한 권이 물 한 동이라고 생각하시고 ‘기적의 책’ 한 권만 사주세요”라고 당부했다.

기적의 책 캠페인에 참가하는 구경선 작가.
기적의 책 캠페인에 참가하는 구경선 작가.

― 장애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이 꼭 필요한가.


“병원에 가면 소리를 들을 수 없어 간호사에게 제 순서에 꼭 알려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 간호사도 워낙 바쁘니까 따로 알려주지 않아 오래 기다린 적이 많았어요. 장애어린이를 위한 병원이 생기면 좀 더 편안 환경에서 병을 고칠 수 있겠죠.”

―독자가 베니에게 공감하는 이유는.


“솔직함이죠. 누구나 어렸을 땐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친구하자’며 먼저 손 내미는데, 나이가 들면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죠. 제가 먼저 용기를 내서 사람들에게 솔직함을 보여준 것 같아요.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는 순간도 있는데 말 대신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한 것도 영향이 있겠죠.”
― 요즘 어떤 작업 중인가.

“베니 그림에 색칠하는 컬러링북을 작업하고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게요.”

― 책에서 베니가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짚는 걸로 나온다. 청각과 시각 장애를 앓는데 늘 즐거울 수만 있나.


“괜찮은데, 가끔 우울해져 그냥 눈물이 뚝뚝 나올 때도 있죠. 일부러 아무 것도 안 하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죠. 감정의 굴곡이 있는 건 저도 똑 같아요. 호호.”

― 책에 담지 않은 버킷리스트가 있나.


“내년이면 엄마가 환갑인데 집을 꼭 사드리고 싶어요. 작업실에서 보면 어머니에게 사주고 싶은 아파트가 보여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독자를 위해 책에 서명을 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삶도 참 소중합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이 소중하단 걸 꼭 알았으면 해요. 저도 그걸 알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 채 절망 속에서 좌절한 채 살았거든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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