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한국화 된 독일 뮤지컬 ‘로빈훗’…천하를 주름잡았던 영웅 맞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3월 26일 05시 45분


뮤지컬 로빈훗은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춘 독일 뮤지컬이다. 영국의 서민영웅 이야기를 귀에 쏙쏙 박히는 음악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곳곳의 웃음코드로 풀었다. 왕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체포된 로빈훗을 연기하고 있는 엄기준. 사진제공|엠뮤지컬아트
뮤지컬 로빈훗은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춘 독일 뮤지컬이다. 영국의 서민영웅 이야기를 귀에 쏙쏙 박히는 음악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곳곳의 웃음코드로 풀었다. 왕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체포된 로빈훗을 연기하고 있는 엄기준. 사진제공|엠뮤지컬아트
뮤지컬 로빈훗은 뭐랄까, 지극히 ‘한국화’된 독일 뮤지컬이다. 여기서 ‘한국화’라는 것은 한국 전통문화와의 융합, 삽입과는 관련이 없다. 한국관객의 입맛에 맞추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로빈훗은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처럼 범세계적 영웅으로 익숙한 인물이다. 12세기 영국의 서민영웅으로 왕을 살해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셔우드 숲에서 산적들의 두목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모시던 리처드왕의 아들 필립 왕세자를 옹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인생 스토리는 사뭇 다르지만, 서민들의 영웅이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임꺽정이나 홍길동과 비슷하다.

‘삼총사’, ‘잭더리퍼’ 등 외국 뮤지컬을 들여와 ‘한국화’시키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엠뮤지컬아트의 작품이다. 숲을 표현하기 위해 깊이를 강조한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유럽뮤지컬답게 음악도 나쁘지 않다. 클래식의 본고장 독일뮤지컬이지만 음악은 고전적이지 않다. 캐스팅도 호화롭기만 하다. 유준상, 이건명, 엄기준이 로빈훗을 맡았고, 아이돌스타 규현(슈퍼주니어), 뮤지컬 배우 박성환이 필립 왕세자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화’를 위해 강조한 듯한 곳곳의 개그코드가 양날의 칼이 되었다. 배우들의 개그는 어김없이 관객을 폭소하게 만들지만, 왕왕 스토리의 흐름을 끊었다. 웃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사랑(로빈훗)과 돈(길버트)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인 마리안의 정체성은 모호했다. ‘방황’이 아니라 돈과 명예에 중독돼 옛 연인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녀로만 보였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탈출하고(마리안이 유일하게 로빈훗을 돕는 장면이다), 산적두목이 되어 고군분투하는 데다 연인에게마저 괴롭힘을 당하는 로빈훗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저나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한때 천하를 주름잡았던 영웅이 토끼 덫이라니. 다른 나라에서 제작한 ‘홍길동’의 최후가 이런 식이라면 조금 아연할 것 같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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