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취해 사는 고은 시인. 서재는 2만여 권의 책으로 가득하다. 안성 옛집에도 아직 그만큼의 책이 남아있다. 수원=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나라가 망했을 땐 언어가 나라를 대행합니다. 언어를 빼앗으면 더 이상 뺏을 게 없지요.”
2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엠플라자 해치홀. 다국적 독서클럽인 ‘서울북&컬쳐클럽’에 2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고은 시인(82)이 한국 현대사 얘기를 시작했다. 1994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영국 출신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73·영국명 브러더 앤서니)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로 교육받으면서 어떻게 한국인, 한국어에 대한 인식을 키웠느냐”고 질문한 직후였다. 청중의 절반은 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좌석이 다 차있자 바닥에까지 빼곡히 앉아 경청했다.
고은 시인은 소학교에 입학한 뒤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야 했고, 일본어를 써야 했다. 매일 일왕이 사는 방향을 향해 절을 하고, 일왕에 대한 묵념도 해야 했다. 그는 “밤에 몰래 한글을 익혔다”고 회상하며 “나의 모국어는 밤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는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모국어에 위기를 느낀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따라 모국어가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간 것보다는 앞으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한국어가 미래에도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때(한국어가 살아남지 못할 때)는 나는 무덤 속에서 한국어로 시를 쓸 것”이라고 하자 청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고은 시인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는 “폐허와 죽음이 내 삶의 시작이 됐다. 나의 시도 폐허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군사독재 시절 수감생활에 대해 묻자 감옥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던 것을 이야기하며 “완전히 인간의 현재가 박탈됐는데, 과거만이 없는 현재를 대행해줬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추억이 결코 사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것도 없는 현재를, 과거만이 감당하게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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