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소설가 한창훈(51)의 ‘바다와 술’ 이야기다.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 마시는 사람’ 이야기다. 한창훈은 거문도 해발 1m의 바닷가 월세 집에서 살고 있다. 귀신 나오는 집이라 한 달 10만 원만 내면 된다. 그곳에서 원고 쓰고, 낚시 가고, 밥 해먹고, 술 마시고, 음악 들으며 산다.
딱 200년 전 흑산도 유배객 정약전(1758∼1816)도 자산어보를 썼다. 그도 눈만 뜨면 바다를 마주 보며 술을 마셨다. ‘유배 16년 동안 파도에 에워싸여/날마다 미친 바다에는/배 한척 뜨지 않는데/무엇을 쓰고 무엇을 노래하겠는가’(고은 시인). 정약전은 어부는 물론이고 천한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막걸리 잔을 나눴다. 섬사람들은 그를 서로 자기 집에 모시려고 다퉜다.
한창훈은 이러저러 고깃배 선원과 여기저기 공사 현장, 공장을 전전하며 살았다. 2013년엔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 얼음바다에도 갔다.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떠다니는 얼음덩어리를 조각내서 보드카 칵테일을 만들어 마셨다. 그 전엔 현대상선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두바이, 홍콩∼로테르담의 먼 바닷길을 항해했다. 술이 빠질 수 없었다.
거문도 주민들이 쌈짓돈을 털어 구입한 팔경호라는 조합배가 있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을 만나, 청산도 내항으로 피했다. 하지만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 정박된 배들을 박살냈다. 선원들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몰고 나가기로 했다. 배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발에 막소주를 가득 부어 이별주로 마셨다.
그렇다. 배는 파도가 치면 흔들려야 한다. 그래야 뒤집히지 않는다. 사람도 흔들릴 때마다 한잔 마셔야 살 수 있다. 한창훈은 오늘도 거문도 바닷가에서 ‘피 같은’ 술잔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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