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태주 시인 “중요한 건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만족… ‘자뻑’을 배웁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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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없는 시인’ 림태주… 페북 글모아 첫 산문집 펴내
명랑-유쾌-감성의 시적 산문… 조국 교수 등 공유 통해 큰 반향
페친 5000명에 팬클럽 회원 600명
“지적 욕망이 들끓는 페이스북은 자기 이야기 있는 30,40대에 적합”

첫 책으로 산문집을 펴낸 림태주 시인. 그는 “슬픈 이야기는 담담하게, 진지한 이야기에는 반전을, 감상적인 이야기는 감정을 더욱 넘치게 쓰고 싶다. 산문을 시처럼 쓰고 싶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첫 책으로 산문집을 펴낸 림태주 시인. 그는 “슬픈 이야기는 담담하게, 진지한 이야기에는 반전을, 감상적인 이야기는 감정을 더욱 넘치게 쓰고 싶다. 산문을 시처럼 쓰고 싶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시인, 책바치, 명랑주의자, 야살쟁이, 자기애 탐험가, 미남자. 바닷가 우체국에서 그리움을 수학했다. 봄으로부터 연애편지 작법을 사사하고, 가을로부터 우수에 젖은 눈빛을 계승했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다. 황동규 시인의 기대를 받으며 1994년 ‘한국문학’으로 등단했지만 아직 자기 이름 새겨진 시집 한 권 없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돈벌이 잘되는 전공(수산경영)을 했지만 책 곁에서 맴돌고 있다. 시집보다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예담)을 먼저 펴낸 시인 림태주의 이야기다. 》

‘행성:B’라는 작은 출판사를 꾸리는 시인은 남의 책만 만들다가 드디어 ‘저자’가 됐다. 하지만 매달 십여 권의 시집이 쏟아지는 한국에서 20년간 시집 한 권이 없다니.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장석남 시인의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을 읽고 좌절했다. 시를 이렇게 쓰는 사람이 시인이어야 되겠더라. 시를 정말 사랑하면 좋은 독자로 남아도 괜찮지 않을까. 1990년대 말 ‘문학동네’에 작품을 발표한 게 마지막이다. 지난해 실천문학에서 시집을 내자고 해서 시를 정리하다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런 그가 산문집을 묶게 된 것은 페이스북(페북)의 힘이었다. 시집 없는 시인은 2010년 7월 출판사를 차리고 페북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정신을 지닌 ‘출판쟁이’인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겪는 애환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연을 맺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도 함께 나눠갔다.

“페북에서 누누이 강조한다. ‘자뻑을 배워라!’ 일종의 자기 최면인데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거다. 자기 계발하려고 인문학당 쫓아가고 남의 인생 카피해서 가져오지 말고, 책 인용해서 글 쓰지 말라고. 중요한 건 자기 계발이 아니고 자기만족이 먼저라는 거다. 배우는 것보다 자신을 탐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현실에서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그이지만 페북에서는 명랑주의자로 변신한다. 욕 한 바가지 들어도 목소리만으로 힘이 돼 준 엄마 얘기도 쓰고, 지슬밥(감자밥)만 먹이는 제주 출신 하숙집 아주머니(사실은 아내), 문자로 세상을 배우는 어설픈 책바치보다 유식한 나팔꽃 다방 꽃니미도 페북에 불러냈다. 고3 딸과 고1 아들에게 주는 글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공유하며 물결을 일으켰다. 명랑 유쾌하면서도 애잔한 감성을 품은 시적인 산문에 매료된 이들이 늘어갔다. 지금 시인의 페북은 친구 5000여 명에 팔로어만 3000명이 넘는다. 팬클럽 회원은 600명에 이른다.

산문집을 엮으면서 필요한 부분은 모두 페북 안에서 해결했다. 본문 사진은 페북 친구들로부터 받은 1000여 컷 중에서 골랐고, 추천사 역시 그 친구들이 써줬다. 추천사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조국 교수, 류근 시인, 정철승 법무법인 더 펌 대표변호사.

“페북은 자기만의 콘텐츠, 자기 이야기가 있는 30, 40대에게 적합한 것 같다. 배우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도 충족시켜 준다. 지적인 욕망이 들끓는 페북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호응을 받는다. 나는 내 글이 항상 부끄러웠다. 잘 쓰는 글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페북이 없었다면 책을 낼 용기를 얻지 못했을 거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페북#행성:B#림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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