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의 소름 끼치는 완벽한 연기 김다현의 남녀 오가는 중성적 매력 불꽃 튀는 연기대결 보는 맛도 쏠쏠
팬들 사이에서 ‘엠나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연극 M. 버터플라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제목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M. 버터플라이는 1986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을 모티브로 한 연극이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 재판에서 외교관 출신인 버나드 브루시코와 그의 연인 쉬 페이푸는 기밀 유출혐의로 각각 6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세기의 연인은 남녀가 아닌 ‘남남’ 커플이다. 요즘 세상에 남남 커플이 세기적인 화제가 될 만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버나드 브루시코는 재판정에서 “나는 쉬 페이푸가 여자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반면 쉬 페이푸는 “1964년 처음 서로 만났을 때 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라고 반박했다. 외교관과 경극배우로 만나 오랜 기간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성관계를 맺고, 심지어 아들(훗날 쉬 페이푸가 3000위안을 주고 데려온 아이임이 밝혀진다)까지 두었던 두 사람의 엇갈린 증언은 재판 결과 이상으로 세인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 두 배우의 불꽃 대결…마지막 충격적인 장면에 등골소름
M. 버터플라이는 이 기괴한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이다. 1988년 미국 워싱턴에서 초연됐으며, 이후 뉴욕 유진오닐씨어터에서 777회 연속 공연됐다. 이는 아마데우스가 보유하고 있던 기존 최장기 공연기록을 깬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에 연극열전4의 두 번째 작품으로 첫 선을 보였다.
이 만만치 않은 연극을 관람하는 포인트는 역시 두 배우의 연기에 있다. 버나드 브루시코와 쉬 페이푸는 극중에서 르네 갈리마르와 송 릴링으로 이름이 바뀐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겪고, 스파이가 되고, 마침내 재판을 받기까지 운명과 시간의 수레바퀴가 숨 가쁘게 굴러간다.
르네 갈리마르를 맡은 이석준의 연기는 확실히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찌질하면서도 처연한 사랑,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몸부림치는 르네 갈리마르의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독하게’ 표현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한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긴 독백을 남기며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해가는 이석준의 연기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남자와 여자를 오가는 김다현(송 릴링)은 이석준의 원숙한 연기에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 시퍼런 불꽃을 튀긴다. ‘꽃다현’으로 불리는 미모(?)로만 승부하지 않겠다는 의욕이 느껴진다. 자칫 과장될 위험이 있는 여성스러움보다는 신비감을 장착한 중성적인 매력에 중점을 둔 것도 좋았다. 관객은 ‘김다현’을 보러 갔다가 ‘송 릴링’을 품고 나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에필로그 한 토막. 실존인물인 이들 커플은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사면된 이후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을 뿐 직접 만난 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쉬 페이푸는 ‘중국판 마타하리’라는, 세상이 자신에게 덮어씌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TV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버나드 브루시코는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다른 남자들과 교제하며 살았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