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영혼과 닿으리라는 착각으로 그림 그렸지”

  • 동아일보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업 50년 展

자신을 대표하는 ‘물방울 그림’ 앞에 선 김창열 화백. 갤러리 현대 제공
자신을 대표하는 ‘물방울 그림’ 앞에 선 김창열 화백. 갤러리 현대 제공
“살아… 남았습니다.”

29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막하는 대규모 개인전을 앞둔 김창열 화백(84)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짧게 답했다. 올봄 전립샘암 수술을 받은 작가는 영롱한 물방울이 때론 홀로, 때론 군집을 이룬 작품들을 둘러보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신관과 본관에서 열리는 ‘김창열 화업 50년’전은 ‘물방울 화가’로 친숙한 원로작가의 반세기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다. 1970년대부터 근작까지 40여 점을 선보이는데 대부분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9월 25일까지. 02-2287-3500

프랑스로 건너간 이래 평생을 바쳐 그려온 물방울에 대해 그는 “무색무취하고 뜻이 없다. 그냥 투명한 물방울이다”라고 얘기하지만, 있다가 사라지는 물방울은 인생의 은유처럼 읽힌다. 그는 “같은 물방울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그리려고 작업했다. 화가들이 착각이 심하기 때문에 영혼하고 닿을 수 있겠구나 하는 착각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초기엔 물방울만 그렸으나 차츰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이 등장한다.

전시에 앞선 간담회에서 김창열미술관이 제주도에 들어선다는 반가운 소식도 발표됐다. 평남 맹산 출신 화가는 6·25전쟁 때 피란 가 1년여 제주에서 살았다. 올 5월 그는 제주도와 협약을 맺고 200점을 기증했다. 그는 “내 작업의 전체, 내 인생의 전부를 다 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 옆자리에서 기증 과정을 설명하던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이 잠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이 이미 써놓은 유언장을 새롭게 고쳐서 가족에게 남기려 했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가족들 모두 기꺼이 응해 주어서 가능했죠.” 박 회장은 1976년 전시로 인연 맺은 김 화백을 ‘살아있는 도인’ 같은 분이라 소개하면서 “솔직히 이 전시가 마지막이 안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연로한 화가는 “작업할 때 양손을 다 쓰는데 흔들리면 왼손을 받치고 그린다. 젊었을 때와 필력이 다르다”며 “어시스턴트 10여 명이 거쳐 갔고 지금은 두 명이 돕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바람은 “너절하지 않은 화가가 되는 것”이란다. 너절함의 의미를 묻자 그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답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김창열#물방울#김창열 화업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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